방금 밥을 먹으며 원치 않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보도하는 기사 내용 내내 불편함을 느꼈는데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때문이었다.
가령, 내일 누군가 도착을 한다고 해 보자. 중립적인 기사라면 "ㅇㅇㅇ 내일 도착" 이렇게 보도를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방송은 특이하다.
"ㅇㅇㅇ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
내일 도착한다는 사실은 같은데도, 표현이 이래버리니 엄청 부정적으로 들리게 된다. 왜 내일 도착할 사람을 오늘 도착하지 않았다고 표현을 하는가? 이렇게 같은 사실도 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나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린다. 사람의 이성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존재하고 감정은 현재에 대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내일 도착한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장의 현재만 보게 만들어 감정을 흔들고 부정을 심어놓게 된다. 감정은 그렇게 현실을 왜곡시킨다.
시장의 가격 역시 그러한 감정에 의해 판단을 흔들게 된다. 지나고 보면 저점과 고점이 한번씩 존재하며, 결국은 상승으로 마감을 하게 된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데 감정은 현실에 휘둘린다. 분명 오를 걸 알면서도, 당장 내릴 것 같은 공포에 휘둘려서 매도를 눌러 버리는 거다. 대게 그런 결정은 하락의 마지막 즈음에 일어나게 된다. 98도까지 잘 참다가 끓는점을 1도 남겨둔 99도에서 공포가 극대화가 되어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다. 공포에 사라는 말은 아마도 그래서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공포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돈 따는 사람이 그리 적을 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이성으로 보면 하락은 하락이 아니고 상승도 상승이 아닐 수 있다. 당장의 호가창에서 빨갛고 파랗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만 보고 있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원치 않는 매수와 매도를 하게 된다.
그러니 당장 시세창에서 관심을 끊고 몇 년간 여행이라도 다녀 오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