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도 등급이 나뉜다. 아니, 등급이라고 하니 이상하다. 독자층이라고 해야겠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히 일부만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바로 대중 작가로서의 성패를 나누는데, 가급적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 크게 성공한다.
그렇다고 글의 수준이 낮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글의 수준은 높을수록 좋다. 다만 그 높은 수준을 가급적 낮은 차원으로 풀어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
글을 쉽게 쓰는 데 거기 담긴 게 많으면 그 글은 매우 가치 있게 여겨지며 크게 성공한다. 한마디로 글이 품은 가치와 그걸 표현하는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면 날수록 글의 가치는 올라간다.
반대로 말하자면, 쉬운 글을 쉽게 쓰거나, 어려운 글을 어렵게 쓰면, 그 글은 망한 거다.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쉽게 읽히는 글 속에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보통 선생님들이 글을 잘 쓴다. 나는 알지만 상대는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글은 읽기가 쉽고 편하다.
마찬가지로 기자들도 글을 잘 쓴다. 그들 역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어느 정도 독자층이 있기에, 그리고 그 독자층을 성인 이상, 혹은 그 중에서도 식자층으로 한정하기에 약간은 더 허들이 높아지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 가장 안타까운 부류는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그것이 넘쳐흐르는 사람들이다. 많이 읽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작가가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넘치는 그것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하지만, 남들과의 교류가 없이 혼자만의 세상에서 단어의 성을 높이 쌓은 사람들은 그 성에서 내려오는 법을 잘 모른다.
결국 남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기 보다는 자신에게서 넘쳐흐르는 것을 글을 옮겨 적기에 급급해진다. 그 글은, 매우 높은 지성을 담고 있지만 온전히 전달되기가 힘들다. 마치 조그만 수레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속도도 느리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런 글은 온전히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본 사람이, 특히나 가급적 어린 사람을 대상으로 가르쳐 본 사람 일수록 글을 잘 쓴다. 대표적으로는 스티븐 킹을 비롯해서, 성공한 작가 중에는 선생님이었던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의 글은 정말로 읽기 편하면서도 재밌다.
그러니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아무나 붙잡고 뭔가를 가르쳐 주는 훈련이 글쓰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내 이야기 하는구만’하고 흐뭇해 할 몇명의 선생님들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