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대표팀이 던진 상패에 머리가 찢어진 피해자는,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조용히’ 끝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침묵’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이 당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자기가 당해야만 나서는 사람들을 비난하곤 한다. 남이 당할 땐 조용히 있다가 자신이 당해야만 나서냐고.
하지만 나는 그나마 자기가 당했을 때라도 나서는 사람은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남이 당하고, 심지어 자기가 당해도 침묵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우나, 그래도 피해자는 피해자로서의 역할이 있다. 피해를 더 이상 확산시켜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가해자는 괴물이 되고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학창시절의 일진과 왕따를 생각하면 된다. 누군가 저항하면 피해는 거기서 멈춘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는 침묵한다. 나머지는 방관한다. 그러면서 왕따는 늘어나고 일진은 괴물이 되어간다.
요즘 일어나는 미투 운동도 양상은 비슷하다. 피해자는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고 더 이상 자신의 고통을 기억조차 하기 싫기에 침묵하게 된다. 그러한 침묵은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고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그렇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내부 고발을 해 봐야 변하는 게 없으니, 피해자는 제 2의 피해를 당할까 봐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누군가 괴물이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의 구제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왜 내가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는데 괴롭히냐고 해서는 안 된다. 당했다면 갚아줘야 한다. 맞았다면 때려줘야 한다. 비록 과거에 다른 사람이 당하는 걸 알면서 침묵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당했을 때마저 침묵하면 안 된다. 그 때까지 침묵하면, 비로소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게 되는 하나의 괴물이 탄생하게 된다.
침묵을 깨라. 피해를 호소하라. 조용히 있지 말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가해자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어줘라.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 남에게까지 확산되기 전에 반드시 저항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괴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