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 그 모든 행위에 대해 의심을 하곤 한다. 왜냐면, 행복이란 절대로 목적한다고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떨어지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그 과정에서 행복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안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게 부산물이라는 거다. 어떤 커다란 다른 것에 충실할 때 떨어지는 조그만 부스러기 같은 것인데, 그 부스러기를 목적으로 하는 순간 본말전도가 일어나 버리게 된다. 마치 루왁 커피를 얻기 위해 사향고양이를 학대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부산물을 목적으로 하는 순간 원래의 행동은 기만당하게 된다. 좋은 글을 쓰면 보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보상만을 위해 글을 쓰게 되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의심을 하곤 한다. 그들이 정말로 행복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행복을 전달한다는 행위 뒤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좇으려 하지 말자. 그것은 마치 짝사랑 같은 것이라서,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행복은 오로지 충실한 삶에 대한 부산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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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삶의 모든 일들은 농사와도 비슷하다. 사계절 중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서, 행복을 누리는 시기는 극히 짧다. 논밭을 갈고, 물을 대고, 파종을 하고, 잡초를 뽑고, 농약을 치고, 수해에 대비하고,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고생하고 나면 수확의 시기가 오는데, 그 수확은 전체 기간 중 딱 며칠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 축제 대부분은 그렇게 가을에 몰려 있다. 일 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인데, 그게 그리 길지 않다. 그 짧은 축제의 순간에 행복이 몰려 있고, 그 행복의 시간을 만끽하기도 전에 다시금 긴 겨울이 시작된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씨앗을 보며 탐스러운 과실이 맺힐 것이라는 걸 확신하기란 힘이 드는 일이다. 혹은, 그저 시간만 보내면 그런 미래가 생긴다고 여기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과 병충해라는 혹독한 장애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삶에서 행복이 주어지기 까지는 많은 고난이 따른다.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참고 견디는 사람뿐이다. 그렇게 인내를 배운 사람은 점점 익숙해지게 되어, 드디어 다음 해에는 씨앗을 보면서도 탐스런 과일을 어렵지 않게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더위와 병충해를 견뎌야 하는 것도 잘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