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PC통신을 처음 접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랬겠지만, 나 역시 그 파란 바탕화면에 하얀색의 글씨가 올라오는 광경을 잊지 못한다.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후 어머니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가며 나우누리니 하이텔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순간부터는 우리집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몇십분이고 분통이 터지게 된다. 휴대폰 마저 없던 시절 가정의 유일한 통신도구를 그 파란화면과 하얀 글짜가 점령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글 몇줄 쓰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는 시대이지만, 그 때는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먼 도시에 사는 사람과 잡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채팅창에서 몇명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게시판에 글을 쓰곤 했다. 리플을 다는 기능이 없으니 대화가 이어지려면 게시판에 계속해서 글이 올라오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소설을 써서 올리는 사람이었고, 처음의 나우누리에 있는 SF/FANTASY 라는 게시판에 글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처음 써 보는 소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리 없었다. 그곳에는 지금은 유명한 웹소설 작가들이 즐비하게 태동하던 곳이었다.
나우누리의 SF게시판은 소설들로 유명했지만, 그 보다 잡담들이 더 재밌는 곳이었다. 커뮤니티들이 다 그렇듯 간혹 대첩이 터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지금과 똑같이 참전하는 사람, 욕하는 사람, 떠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등 매우 북적북적했고, 그게 이루 말 못할 재미였다.
그러다 나우누리 계정비를 낼 돈이 없어지면서 결국 하이텔 계정을 가진 형의 친구 계정을 빌리며 하이텔 생활이 시작되었다. 잡담란을 찾아 헤메던 나는 하이텔의 serial 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연재소설을 연재하는 그곳은 전설의 퇴마록이 올라왔던 곳이었고 드래곤 라자가 올라오던 곳이었다. 나 역시 그 곳에 소설을 몇개 올리긴 했으나, 별 재미는 못 봤고, 결국 소설 잡담을 주로 취급하는 serial잡담란 (기억이 희미한테 serialf 라고 누르면 가졌던 것 같다.)에서 항시 주둔했던 기억이 난다.
리플 기능은 없지만 잡담 게시판인지라 이런 저런 글들이 올라오고 거기에 대해 답변도 주고 받았는데 지금의 디씨인사이드나 루리웹을 비롯한 커뮤니티의 원형이 거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블로그도 그렇고...그곳에는 온갖 주제의 글들이 다 올라왔다. 원래는 관련 소설에 대한 추천, 감상 이런게 올라와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 작가들이 잡담을 올렸고, 그 작가들의 소설보다 잡담이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매일 같이 그곳에 올라오는 글을 읽고 글을 쓰는게 인생의 낙이었다.
이후 PC통신이 저물어가며 나우누리도, 하이텔도 사라졌고, 지금은 구글에서 간신히 당시 활동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후에 블로그 서비스가 나왔지만 그런 아련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뭐랄까... 너무 세련됐다고나 할까. PC통신 시절의 잡담란은 대자보의 느낌이 났다. 어떤 글이든 투박하게 써서 올리고 세련되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의 블로그는 너무 세련되고 전문적이라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지금의 스팀에서는 희미하게 그 시절의 냄새가 난다. kr 태그에 무작위로 올라오는 글들은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숨쉬는 이야기부터 전문적인 이야기까지... 여러가지로 그 잡담란을 연상케한다. 물론 디씨인사이드의 갤러리나 루리웹의 게시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충분히 있겠으나, 뭐랄까, 그래도 이 곳이 좀 더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느낌이랄까. 그렇기에 오히려 좀 더 정감이 간다. 나는 어쩌면 스팀잇에서 당시의 serial 잡담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serial을 아는 분이 계실까 싶어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