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가 있고 꽤 인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극장에서 볼 기회는 없었는데, 며칠 전 케이블에서 방영해서 우연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머문 시선 끝에 큰 감동을 받았네요! (이후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나중에 보실 분들은 뒤로 가기 해 주세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제목인 ‘Me before you’를 처음에는 멍청하게도 “Me in front of you”로 오독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제목을 다시 곱씹어 보게 되더군요. “당신을 만나기 전 나” 라니! 그 자체로도 낭만적인 제목인데 영화 내용에 맞게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주인공(윌)과 여주인공(루이자) 모두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면서 만남 전과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처음에는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덕분에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갖게 되는 약간은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루이자가 윌 덕분에 그전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지은 제목이 아닐까 합니다.
전 영국인, 아니 전 인류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도전적인 삶을 살던 윌은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목 이하 전신마비가 되고 인생의 종지부를 고민하던 때 만나게 된 루이자 덕분에 인생의 기쁨을 다시 찾게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삶을 견디지 못하고 존엄사를 택하게 되죠.
유럽에서는 몇 년 전부터 존엄사에 대해 찬반 논쟁이 크게 있다가 스위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화가 되었고, 국내에서도 작년 시범적 합법화에 이어 올해부터 전격 합법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죠.
저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권리는 존중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의 존엄사 또한 반대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 고통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해봤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순간 순간과 매일이 고통인 분들의 입장을 겪어보지 않고 그 분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도 공감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윌과 같이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어 인생이 180도 이상 바뀐다거나,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고통을 매일 함께 해야 하는 만성통증 증후군 환자 등 신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존엄사를 고민하는 분들의 경우도 찬반이 크게 갈립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존엄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정신적 괴로움 때문에 존엄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만큼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신체 장애나 불치병 보다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방식을 택하든 타인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소극적 의미의 타살이 벌어지기 때문에 부당한 판결이나 오심 가능성과 더불어 사형집행인의 조력 행위(역시 소극적 살인)에 대한 부적절함으로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로맨틱한 영화를 보고 참 무거운 주제만 이야기한 것 같네요. 마냥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무거운 소재를 택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로맨틱하고 적절하게 삽입된 영화음악들은 영화의 멋을 더 살려 주었습니다.
어렸을 적 영화음악에 대한 칼럼을 써보려고 했던 치기 어린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은 ‘미 비포 유’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께는 강추 한 번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