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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질렀던 그리쉬코 슈즈는 밴드가 바느질이 안 되어 있어 손이 좀 갔다.
[취미발레] 슈즈 장비병
슈즈를 고를 때는 바느질 그깟 꺼 좀 하지 뭐 하고 고려하지 않고 골랐는데 막상 시작하니 이것도 노동이었다. (토슈즈 바느질에 비하면 껌이라는데 토슈즈 신을 실력도 안 되면서 벌써 괜히 두렵다..)
처음 슈즈가 왔을 때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발 모양에 맞추어 조절할 수 있도록 둘레를 조절하는 조임끈(aka 더듬이)이 있고 발등을 덮는 밴드가 있다. (오른쪽은 사진 찍는 걸 까먹고 조임끈을 조여 버렸다. ㅠㅠ) 밴드가 발등을 적당한 텐션으로 크로스로 덮을 수 있게 바느질을 하는 것이 목표다.
생각보다 긴시간(40분 정도?) 이 걸렸던 노동의 결과물. 완성하자마자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다음부턴 그냥 박음질 되어 있는 소단사 슈즈 살래.
그런데 내내 이게 뭐하는 짓이야 투덜거리면서 바느질을 했지만 이게 묘하게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육각 만년필 한면을 깎아 드러난 나무 속살에 이름을 썼던 것처럼, 만년필을 손에 길들여서 나만의 만년필로 만들었던 것처럼, 내것이 된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손때 묻은 물건에 대한 애착이 컸다. 헌 물건이라도 내 이름만 적혀 있으면 새 물건보다 가치 있어 보였다.
한번은 만원 정도의 (만년필 치고는 저가인) 만년필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난생 처음 학내 게시판에 찾는 글을 올리고 회사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서 여기저기를 헤집으며 찾아보았다. 워낙 잃어버리는 게 일상인 덜렁이라 그만하면 포기할만 한데 사무실까지 찾아가 분실물 나오면 꼭 연락 달라고 번호를 남겼다. 결국 그 만년필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요즘은 (적어도 나는) 소유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다. 쉽게 내것이 되고 쉽게 잃어버리거나 버리게 된다. 바느질을 하며 새로운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무게감이 내 안에서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다 끝나고 나니 오랜만에 온전히 뭔가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내가 이런 느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물건을 아날로그적으로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