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달에 책모임에서 선정했던 책은 피로사회라는 책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철학책을 읽게 되어서 살짝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였네요. 철학을 잘 모르지만, 철학책은 뜨끔하게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며,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것에 제동을 걸지요.
피로사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과잉 긍정에 대한 제동이었죠. 21세기 이전까지는 ‘면역학적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면역학적 시대’란 단어가 굉장히 어려운 느낌이었지만, 저는 이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면역’ 이란 게 내 몸이 수용할 수 없는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것들로 부터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이런 ‘면역’과 같은 시대라는 것입니다. 개인과 사회가 나와는 다른 것, 즉 ‘이질성’과 ‘타자성’을 가진 것들을 ‘부정’하고, 경계를 긋는다는 것이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와 우리 사회와는 다른 이념과 사상들은 부정하고 배척했던 시대가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21세기 이후에는 긍정성의 과잉이라는 거죠. 이전에는 나에게 이질적인 것들이 더이상 날카롭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소비’자원이 된다는 겁니다. 가령,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그들이 살아온 나라와 다른 나라를 ‘부정’하고 ‘타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국적인 것으로 향유합니다.
한편 이런 긍정성의 과잉은 ‘성과사회’와도 밀접하다고 봅니다.
‘해야한다’, 할수있다’, ‘yes, we can”
성과에 대한 압박은 현대 사회에 우울증을 초래 하고, 탈진한 영혼으로 남게 만듭니다. 책에서는 ‘탈진한 영혼’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소진된 자아’라고 표현해 보고 싶네요. 이 부분에서 고개를 많이 끄덕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저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네요. 제 주변 환경은 ‘할수 있다’, ‘해야한다’ 라는 말들이 흔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가만히 있으면 마치 시간앞에 ‘죄인’처럼 살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 ‘못한다’는 말은 금기어처럼 여겨지기도 했고요. 여전히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끊임없이 성취하는 과정속에 매인 존재들처럼 말이죠.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 하기도 합니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스스로가 가해자 이면서 피해자가 된다니, 굉장히 역설적 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하게 노동이 주는 피로감이 아닌, '불가능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피로라는 점에서 더 뿌리깊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책은 개인적으로 철학책의 역할에 충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유하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부분도 몇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번역된 것이어서 그런지 편하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한글을 보며 다시 번역하는 느낌이 들때가 종종 있었네요. 또한 여기서 바라보는 일부 이분법적인 관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책에서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족한 문장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규율사회에서도 일종의 ‘무기력’같은 우울증은 있었고, 성과사회에서도 성과와 성취를 위한 ‘광인’과 ‘범죄자’도 존재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럼에도 펼쳐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