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한강에 뛰어 들면 벌금을 내야 해요?"
"그럼요. 한강에서 자살하는 경우는요."
그후 그는 부산스레 준비를 한다. 가장 공을 들인건 커다란 벽돌을 구하는 것이다. 그의 몸을 지탱하게 해줄만큼의 무게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문이 하나 있다. 철로 된 육중한 회색문이다. 그 문을 열면 곧장 한강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바로 문을 닫아야 했다. 너무나도 차갑고 무거운 바람이 문 저쪽에서 매섭게 덮쳐왔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조차 힘에 버겁다.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문을 열어 본다. 그는 이미 없다. 유피님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자빠진다. 유피님의 불안한 눈동자가 나를 찾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내 꿈 속에서 숨을 참아본다.
그의 얼굴을 기억해 내려고 애쓴다. 파리하게 깍은 면도자국이 선명하도록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짙은 눈썹 아래 깊고도 어두운 초록색 눈동자, 그 눈을 가릴만큼 자라 있는 앞머리칼, 뾰족한 화살표 콧날과 또렷하고 두툼한 입술, 그는 '단지 세상의 끝'의 가스파르 울리엘이다.
유피님과 나는 어찌 할바를 몰라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움직임도 소리도 없이 그대로 앉거나 서서 칼바람만 맞고 있다. 육중한 문은 그대로 열려 있어 삼킬듯이 달려드는 시퍼런 한강물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꿈에서 깨어 보니 8시 13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카톡이 울린게 8시 10분이었으니 3분동안에 생긴 일이다.
분명히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나를 위한 그의 배려겠지.
문 앞에는 커다랗고 까맣고 말랑한 고무튜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걸 넘어가려면 반드시 빈몸이어야만 했다. 그가 남겨두었을 벽돌을 찾아보려 꿈속 기억을 다시 떠올려봤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벽돌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두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왜 하필 유피님일까? 사실 그전에도 유피님은 나의 꿈에 몇 번인가 출연했었다. 꿈에 나온 유일한 스티미언 이웃이다. 왜 자꾸 그가 내 꿈에 나오는 걸까?
유피님은 루시드 드리머일까? 루시드 드리머는 꿈속에도 다른 루시머 드리머를 만난다고 하는데, 아무말도 하지 않는걸 보면 그도 꿈의 상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유피님이 디스맨일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의 글때문이라고 추정해본다. 그는 자타공인 서사의 대가이다. 그가 서술한 지리산의 웅장함이나 재래시장의 벅쩍한 모습이나 새벽 안개의 알싸한 모습은 내가 경험하지 않아도 내눈앞에 좌라락 펼쳐지게 만들어 준다. 내가 본것을 그가 그의 글로 기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그를 소환했는지도 모른다.
두번째 의문은 그는 진짜 자살한 것일까?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특정인을 인식할 때는 대개 그 느낌뿐이고 정확한 기억이나 모습이 없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또렷한 모습을 남겨주었고,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어쩌면 그저께 밤에 본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을 다 마치지 못함에 대한 주연배우에 미안한 마음일수도 있다.(끝이란걸 천천히 알아보고 싶어 영화 중반쯤에서 멈췄다.) 그가 영화의 끝, 세상의 끝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자취를 감추어버린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가 준비한 벽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무게, 무게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버리고 싶은 삶의 무게가 딱 그만큼이었을까. 고심해서 고른, 그의 발목에 묶어버린 벽돌의 무게를 가늠할 방법이 없다. 지탱의 무게가 될지, 고단의 무게가 될지 그조차 판단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함이 원망스럽다.
이 꿈은 루시드 드림이 아니고 그냥 개꿈일 수도 있다. 요 며칠 나는 이타인클럽님의 루시드 드림에 대한 포스팅을 열심히 읽었고, 고수 주연의 영화 '루시드 드림'을 보았고 '단지 세상의 끝'의 가스파르 울리엘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건 그냥 김작가님의 소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