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나는 아무것도 안하는게 딱 체질에 맞다 싶다.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인으로서 해야 할일들이 많으니 나는 아무것도 안하기를 꿈꾸면서 몰아서 살기로 대체를 하곤 한다. 게으른 나에게 벼락치기는 스승과도 같다.
몰아서 일하기
해야 할일의 목록을 꼭 작성하여 중요하거나 급하거나 단순한 일부터 처리한다. 아이디어 또는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일단은 뒤로 미루어 놓고 두고두고 고민한다. 아이디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경우에는 일자를 기한 코앞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전날 혹은 전전날 삘 받아 한번에 처리한다. 신기하게도 삘이라는 넘은 미리 안오고 꼭 날짜가 닥쳐야만 오는 괘씸한 녀석이다. 그래도 오긴 와서 천만다행이지만! 특정된 기한이 없는 일의 경우는 최대한 미루어 두다가 역시 뜬금없이 삘이 오는 날 한번에 해치운다. 대신 그 일을 다 끝내기 전까지는 지속적인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몰아서 글쓰기
스팀잇에 포스팅 할 써둔 글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준비된 글감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날의 밤, 다수의 글감들이 밀려와 메모장을 각각 한페이지씩 채워 놓고 그중 두세개는 하룻밤에 써버린다.(오늘도 그런 날중 하루이다.) 물론 완성에까지 이르는 글이 겨우 하나가 될까 말까 하고 다음날 밝은 날에 읽어보면 유치해서 버려야 할 글들이 대부분이다. 글의 주제를 놓고 추가수정을 반복해서 완성된 글은 다행히 포스팅에 이르지만, 몇날 며칠 고민을 해도 진도도 안나가고 계속 꼬이는 글들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애닯게 메모장에 꽤나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몰아서 음식하기
집에 먹을 채소가 다 떨어진 날, 재래시장에 나가 한번에 장을 봐온다. 주로 사오는 것은 양파와 감자, 당근, 마늘 따위로 두달 정도 먹을수 있는 양으로 구입해 온다. 밑반찬이라고는 없는 집이지만 주로 집밥을 먹는 나를 위해 김치인 척하는 야채무침을 만들어놓는다. 남편을 위해 콩조림을 만들고... 음... 더는 없다. 가끔 짱아찌를 담그거나 장조림을 해보지만 가족들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그날그날 음식을 바로 해먹는 편이다. 부산스럽게 한달에 한번 정도는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생각해보니 사실 별로 하는건 없다.
몰아서 책 읽기
책은 한번 붙들면 그 자리에서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아주 흥미로운 소설의 경우에 한해서다. 빠른 경우엔 두시간 정도, 좀더 오래 걸릴 때는 대여섯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한권의 책을 끝낸다. 나는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자세를 계속 바꿔가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랑 팔꿈치랑 뒷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아예 옆으로 누운 폐인 자세로 책을 본다. 그렇게 옆으로 누운 날엔 가족들 식사준비를 패스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닥 흥미로운 책이 아닌 경우엔 베드 테이블에 놓고 조금씩 읽지만, 대개 먼지가 쌓일 정도가 되어서야 몰아서 본다.
몰아서 영화 보기
한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기본 두세편 정도는 연속으로 봐줘야 한다. 얼마전에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이런 날은 꼭 스팀잇을 건너뛰어야 한다. 고르는 영화 장르는 그날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다른데, 요즘 같은 날엔 느리고 지루한 영화보다는 적당히 감동이 있어 가슴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영화를 보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도 한번 손을 대면 적어도 한 시즌은 한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보려고 하지만 꽂히는 경우엔 주구장창 본다. 몰아서 본 마지막 드라마는 워킹데드였다. 시즌 8은 몰아보려고 손도 안 대고 있다. 제발 더 이상 시즌이 안나왔으면 좋겠다.
몰아서 잠자기
해야 할일이 많을 때는 더욱 잠을 잘 못 자는 편인데, 잇몸과 입술이 곪아터질 때까지 못 잘때도 많다. 평소 작업하면서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알코올이 피로도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두배 이상으로 축적된 피로가 몰려온다. 이럴 때는 토요일 낮에 몰아자기를 한다. 토요일은 정말 잠자기 적당한 날이다. 아이들도 친구 만나러 나가고 남편은 출근하고, 나에겐 평일(work day)이 아닌 진정한 휴일인 셈이다. 병든 닭처럼 두세시간에 한번씩 깨어서 물만 마시며 자고 또 잔다.평생의 습관이라 좀처럼 바꾸긴 어려울 듯하다. 한창 이쁠때에도 이 습관때문에 연애도 못 했으니까 더 설명이 필요없다. 딱 한번의 연애했던 시기에 몰아자기를 하지 않았었다.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몰아서 스팀잇하기
하루 일과중 일을 하든, 놀이를 하든, 운동을 하든, 뭘 하든 시간시간에 충실하려고 한다. 스팀잇도 그중의 하나인데 마찬가지로 한번에 몰아서 하는 편이다. 글은 미리 써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포스팅은 복사 카피를 하면 되고(물론 수십번의 수정을 반복하지만), 댓글을 달거나 이웃을 방문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한다. 그런데 요즘 점점 그 시간이 자꾸 길어져서 큰일이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분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운동 중간중간에도 피드를 읽고 있다. 중독인가.
아무것도 안하기
이렇게 모든 일들을 몰아서 해치우고 남는 시간엔 그냥 아무것도 안한다. 진짜다. 음악을 들으며 멍때린다.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참 귀한 시간인데 문제는 여유의 시간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발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