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실업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경제의 회복세를 실감하고 있지만,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목표치를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안이 논쟁이 되는 이유와 영향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논의가 좀 길어질 것 같아 이번 포스팅에서는 기초적이고 이론적인 개념들을 주로 다루고, 다음 포스팅에서 실제로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수요측 이야기 : 중앙은행과 물가안정
1) 중앙은행의 역할과 수단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인플레이션을 일정한 목표수준에서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법을 보자. 제 1조 1항에 따르면,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미 연준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두 가치를 준수하려고 하는데 이를 dual mandate라고 한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국내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을 활용한다. 즉, 화폐량 및 금리를 조작함으로써 국내수요를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먼저 중앙은행은 정책수단을 활용하기 전에, 현 상황이 경기순환 과정에서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GDP의 추세와 계절변동을 제거한 후, 등락(fluctuation)을 나타내는 파동만을 분석한다. 그런데 경기안정화의 방향은 '경기가 고점이 되기 전에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과열을 방지하고, 저점이 되기 전에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침체를 막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기순환을 알아보는 유용한 수단이 바로 GDP 갭이다. GDP 갭은 '실제 GDP - 잠재 GDP'로 정의되는데, 이때 잠재 GDP란 한 경제에서 가용한 자원을 모두 사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생산량으로 정의된다. 잠재 GDP는 주로 노동과 자본, 기술 등의 요인이 결정하므로 공급측 요인이며, 그 외의 수요측 요인들은 모두 실제 GDP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GDP 갭은 수요와 공급 간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이에 따라 GDP 갭이 양(음)이면 수요가 공급을 상회(하회)하고, 물가는 상방(하방)압력을 받을 것이므로 금리를 올(내)려야 한다.
-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운용하는 통화정책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현대적인 '금리정책'만을 생각해보자. 금리를 조작하면 왜 수요에 영향을 미칠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실질)이자율과 총수요, 그리고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1) 이자율과 총 수요의 관계 : 총 수요는 소비와 투자, 그리고 순수출(수출-수입)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구성요소는 모두 실질이자율과 음의 관계를 갖는다. 투자는 실질이자율에 가장 민감한 요소로서, 이자율이 올라가면 차입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위한 고정투자가 감소한다. 이자율이 올라가면 주택담보대출의 수요가 감소하므로 주택투자도 감소한다. 순수출은 다소 복잡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만일 한국이 미국보다 이자율이 높다면, 한국 내 원화계좌와 자산들의 수요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외화의 유입을 통해 원화의 가격을 상승시킨다. 그리고 원화의 가격상승(환율하락)은 순수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소비는 다른 요소들보다 실질이자율에 덜 민감하지만, 실질이자율의 상승 시 사람들이 저축을 늘린다는 일단의 증거가 있다. 보다 많은 저축은 보다 적은 소비를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총 수요(투자와 순수출, 그리고 소비)는 모두 실질이자율과 음의 관계에 있다.
(2)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의 관계 : 앞서 총수요는 실질이자율과 음의 관계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은행은 실질이자율이 아니라 명목이자율을 통제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면 중앙은행이 실질이자율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Fisher Equation(명목이자율=실질이자율 + 기대 인플레이션)에 있다. 중앙은행이 실질이자율을 내리려고 할 때는 인플레이션 기대치보다 더 많이 명목이자율을 내림으로써 실질이자율의 인하가 가능하다.
2) 테일러 준칙
- 앞서의 기본개념들을 감안하면, 중앙은행은 명목금리를 조작함으로써 총수요(GDP)와 물가(인플레이션율)에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John. B. Taylor(1993)는 미 연준의 역사적인 정책금리(FFR)를 분석해본 결과, FRB의 정책금리의 결정이 다음과 같이 인플레이션율과 GDP 갭에 근거한 간단한 공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바로 다음의 식을 Taylor Rule(테일러 준칙)이라 부른다.
이때 실질중립금리란 경제가 잠재수준에서 성장하고(실제 GDP=잠재 GDP), 수요측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지 않은 상항(실제 인플레이션율=목표 인플레이션율)에서의 실질금리 수준. 이를 달리 표현하면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이 실제 GDP를 잠재 GDP 수준으로 수렴시키는 실질 균형금리라 할 수 있다.
- 위 간단한 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GDP 갭이 양이고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목표치를 초과하고 있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이 테일러 준칙이 실제로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하는지 많은 실증연구가 이뤄져왔다. 아래 그림은 Ben Bernanke가 미 연준의 역사적인 정책금리 데이터와 테일러 준칙에 따른 금리를 비교한 것으로, 상당히 유사한 궤적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FRB의 정책결정자들은 테일러 준칙과 같은 Rule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정책을 채택해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테일러 준칙은 FRB가 잠재의식적으로 따르는 하나의 규칙을 발견해낸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위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살펴보는 것이다. 금융위기 직후 테일러준칙에 따른 금리추정치는 음의 영역에 위치해 있지만, 현실의 명목금리는 0의 하한(Zero Lower Bound)이 존재하기에 음의 영역으로 내려갈 수 없다. 이는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할 수 있었다면, 금융위기의 여파가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수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Williams(2009)는 미국의 정책금리가 제로 수준에 다다른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사용할 수 있었고, -4% 수준으로 금리정책을 운영했다면 4년 동안 미국 경제의 부양효과는 약 1.7조 달러에 이르렀을 것이라 추정했다.
-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으로 수요측면에 영향을 줌으로써 GDP와 물가를 변화시키는 논의를 전개했다. 이것은 수요측면의 이야기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 두 측면이 있으므로 이제 남은 반쪽인 공급측 이야기를 해보자.
2. 공급측 이야기 :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 : PC)
- 흔히 사람들이 수요곡선은 물가와 수요량에 반비례하는 것을 나타내고, 공급곡선은 물가와 공급량이 정비례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우선 필립스곡선은 공급곡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확히 말해서 필립스곡선은 현실의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또는 산출량) 간 관계를 묘사하는 식이다. 영국의 필립스(Phillips)는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간의 경험적인 상충관계를 발견했는데, 두 지표 간의 음의 관계를 두고 필립스곡선이라 한다.
중앙은행이 필립스곡선을 중시하는 이유는 이 두 지표가 정책당국자들이 관심을 갖는 경제변수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을 모두 낮추고 싶어한다. 그러나 필립스곡선은 이 양자 간의 상충관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자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동시에 낮출 수 없는 딜레마를 표현한다. 그 이론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공급곡선은 총생산은 물가(인플레이션율) 간의 정의 관계를 묘사하며, 총생산은 실업률과 음의 관계를 갖는다. 이 두 사실을 결합하면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은 서로 음의 관계를 갖는 필립스곡선이 된다.
- 현대경제학의 발전과정에 필립스곡선만큼 논쟁적인 개념도 없었다. 필립스곡선의 발견되면서 정책당국자(특히 Keynesian)들은 정책수행의 이론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만약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안정적으로 부의 관계를 갖는다면, 정책당국자들은 반복적인 정책조정을 통해 원하는 인플레이션-실업률 조합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필립스곡선에는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아래 좌측 그림과 같이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간에 어떠한 관계가 없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경제학자들은 필립스곡선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아래 우측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순히 이동한 것일뿐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면 필립스곡선이 왜 이동하는 것일까? 그것은 '공급충격'과 '민간의 기대' 때문이다. 당시 70년대는 오일쇼크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하던 시기였기에 이런 충격 자체가 필립스곡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물가가 안정적인 시기에는 사람들이 미래에 물가가 오를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인플레이션이 심한 상황에서는 물가인상을 감안해서 행동하게 된다. 사람들이 물가인상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이 기대 자체가 자기실현적으로 물가를 올리게 한다. Friedman과 Phelps 등은 기존의 케인지안들은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간과하고 있으며,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필립스곡선은 결코 안정적인 관계를 나타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정책당국자가 인플레이션을 높이면 단기적으로는 실업을 낮출 수 있지만, 점차 민간은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대하면서 필립스곡선이 상방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Friedman은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자연실업률보다 낮출 수 없으므로, 정부의 확장적인 정책은 결국 인플레이션만 높이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라고 비판했다.
자연실업률이란 말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실업률(NAIRU: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이라고도 하며, 잠재 GDP 수준에서의 실업률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이러한 필립스곡선에 대한 논쟁을 통해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보는 눈을 확장시켜왔다. 위 식은 현대적인 필립스곡선을 묘사하고 있다. 위 필립스곡선 식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민간이 미래에 인플레이션이 오를 것이라 믿는 것이다. 둘째, 경제의 활황으로 인해 실업률이 자연실업률을 하회할 때 생겨나는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다. 셋째, Oil Shock와 같은 외생적인 공급충격이다.
필립스곡선, 즉 인플레이션과 실업 간의 역의 관계가 정말로 현실 경제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실증의 영역인 동시에 신념의 영역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여전히 필립스곡선이 실재하며, 성립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일 필립스곡선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시 말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데, 물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상황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중앙은행은 단기금리를 조작함으로써 성장과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실업이 자연실업률보다 낮은 상황이면 당연히 금리를 올려 과열을 막고, 물가가 목표치보다 낮으면 금리를 인하해서 물가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실업이 낮은데, 물가도 낮다고?
필립스곡선의 붕괴는 물가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게 만든다. 그리고 필립스곡선이 실종됐다는 우려는 지난 한 해부터 각 국의 중앙은행 관계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 다음 포스팅에서는 현재 주요국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필립스곡선이 실종됐다고 하는 논란과 논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후 그 시사점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