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같은 날은 어떤 신에게 기도해야 좋을까요?
덕성여고의 복도에선 무슨일이?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을 따라 도란도란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덕성여고가 나옵니다.
그곳은 제 고등학생 때 절친이자, 지금도 절친인 박지아가 다녔던 학교인데요. 박지아가 제게 해줬던 학교 소개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학교는 한쪽에는 절이 있고, 또 한쪽에는 교회가 있다.
그래서 한쪽에는 목탁 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한쪽에는 찬송가가 들려."
그때 저는
"우와 멋지다!! 그럼 복도 중간에 서서 큰소리로 기도하면 하느님, 부처님이 다 듣고 소원 들어주시겠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절의 이름은 선학원, 교회는 안동 장로교회네요.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과 다른 종교적 노출이 괴로울 수 있겠지만, 그런 게 없는 제게는 마냥 신기한 경험 같았거든요.
내겐 너무 소중한 신들이시여!
변명일지 모르지만, 저의 이런 편의에 의해 믿음은 그럴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우선 절에서 기도해서 낳은 딸이에요.
엄마가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셨는데 쉽지 않아 스님에게 이야기하셨고 "조금만 기다려 보자" 말에 한 달이 채 안 돼 제가 생겼다고 해요. 중학생 때는 숙모 따라 구인사라는 절에서 한 달씩 살다 오기도 했는데 뭔지도 모르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부르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나왔어요.
교목 선생님 만나러 자주 교목실에 들락날락하며 상담을 빙자한 농땡이를 부렸고, 학교 살롬 단원들이 하던 워십은 신나서 따라 했었죠. 수업시간은 아니었어도, 예배시간에 눈이 초롱초롱 했던 건 자부합니다!
3년 전부터는 성당에 가요.
동네 가까운 데 있어요. 그냥 예뻐서요. 성모 마리아상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아요. '그래, 내가 네 맘 다 안다.' 하시는 것만 같고 가끔 저한테 눈 찡끗 해주시는 듯한데 그건 저만 느끼는 거겠죠.
그런데 오늘 왜 갑자기 신앙 타령이냐고요?
하느님에게 뭘 좀 물어보고 싶은 날이기 때문이에요.
오늘 방송인 뽑는 시험에서 떨어졌거든요. 강사가 되고 나서는 3년 만에 보는 시험인데요. 1차도 아니고 3차에서 낙방한 거라 아쉬움이 커요.
강사는 정말' 천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좋은 일이지만 불안정성이 힘들기도 했어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본 거였는데 기대하다 떨어지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아요.
그래서,
'아니 하느님. 그거 좀 붙여주시지 왜 꼭 막판에 떨어뜨립니까? 네?'
따져 묻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절에 가야 하나, 동네 성당에 가야 하나. 아니면 교회?
정말 '아놔'
그래서 무작정 덕성여고가 있는 안국으로 향했습니다.
지나가면서만 봤지 들어가 본 적 없는 덕성여고에 들어가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하나님과 부처님께 동시에 푸념했어요.
'하느님, 진짜 너무하신 거 아녜요? 저 강사 되기 전 오디션에도 148번 떨어졌잖아요. 기죽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한 저한테 자비도 없으세요? '
바로 들은 건 하느님의 음성이 아니라 경비아저씨의 "거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였지만요.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덕성여고에서 나와 비 오는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생각해봤어요.
148번의 낙방이 저를 방송인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으시대지 않고, 다그치지 않는 따뜻한 쌤이라는 평을 듣게 했어요.
강의 잘 한다는 말도 절망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발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요.
그러니 이번에도 하느님은 '그 길이 맞아. 그냥 글 열심히 쓰고 강의나 잘해' 충고하시려던 거였을까요.
아니면 뭔가가 잘 안돼 답답한 분들의 마음을 한 번 더 이해하라는 뜻이었을까요.
뒤숭숭함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하늘에 삿대질하며 씩씩거리던 맘은 3월 봄비를 맞으며 내려앉았습니다. 오랜만에 걷는 인사동 거리가 좋기도 했고요.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최선을 다한 뒤 내 몫이 아닌 영역을 맡기고 홀가분해질 수 있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날 보고 있다 생각하면 든든하거든요. 언젠가 종교를 갖게될지도 모를 일이예요.

그렇게 안국과 인사동 종로에 교보문고를 거쳐 걷고 또 걷고, 집에 와서 글 쓰니 시계가 11시를 가르키는 지금.
저의 진짜 하느님이 '배달의 민족'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요.
이순간 가장 영접하고 픈 건 치느님... 그분의 부르심엔 한없이 작아지는 저입니다....
치킨이 되었든, 기도가 되었든,
오늘 하루 스스로와 대화 하고 하느님께 SOS 하느라 힘들었을테니 푹 쉬라고 셀프토닥 해줘야 겠어요.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일어나는 일에는 다 의미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이 어떤분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제 모습을 대견해 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