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01.
근 이 주 동안 '나의 요즘을 정리해야지…. 오늘은 생각을 꺼내 들여다봐야지' 다짐만 했다. 그리고 시간은 언제나처럼 야속하게 흘러 5월이 되었다. 삶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 떨궈놓고 사라질 듯한 두려움이 찾아오면 고3 교실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5월의 국어 시간, 유영순 선생님은
"너희들이 날 잡아서 국어 싹~ 다 정리해야지. 여름방학 전에 수학 한번 싹~ 다 훑어야지 이런 생각을 할 텐데. 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건 죽는 날밖에 없어." 라 이야기하셨다. 4교시가 끝나면 도시락 먹을 생각에 늘어져 있던 내가 그말이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수학 공식은 다 까먹었어도 그 날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오늘도 유영순 선생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돈다. 그래, 어차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다. 그러니 정돈되지 않은 거친 글과 넉넉지 않은 시간이라도 토해내 보자.
때마침 집 앞 도로공사 소음에 채널스팀잇 녹음은 글렀다.
ㅡ02.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었고 엄만 나가면 집에서 내쫓겠다 엄포를 놓았다. 형편이 좋지 않아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 하나 돌릴 돈이 없던 엄마는 내가 '그런 식으로' 기죽는 게 싫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포기가 빨랐던 나는 "알았어" 하고 담임선생님께 불출마 의사를 표했는데 5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서명호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악착같이 떼쓰고 울고 어리광 부리는 게 더 멋진 거야. 어른인 척 고개 끄덕이면 못써."라며 "하고 싶어, 안 하고 싶어? 그것만 말해봐"라고 물으셨다. 난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고 싶어요" 말하며 통곡했는데 그 길로 달려가 회장 선거 명단에 이름을 넣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주셨다.
유달리 작았던 내 키에 맞춰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춰주시던 선생님. "얘들아, 선생님은 옛날에 진짜 바보였어"라며 재미있는 표정으로 용기를 주시던 분.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이 된 뒤에도 크리스마스와 새 학기가 되면 축하카드를 보내주셨는데, 마지막 편지 속 선생님의 가족여행 사진이 괜스레 부러워 답장을 안 했다는 걸 아실까.
다시 뵙게 된다면, 그때 받았던 큰 사랑과 응원에 아직도 기대어 산다고. 선생님이 해주신 말은 삶의 고비마다 되새기는 질문이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ㅡ03.
나는 간혹 듣게 되는 '선생님'이라는 말의 무게가 두려워 굳이 '강사'라는 표현을 쓰며 살았다. 그래도 써야 하는 경우엔 "쌤"이라고 좀 더 편하게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수업하는 분야. 보이스트레이닝, 스피치 등등의 것들은 뭔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것을 끌어내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강사를 시작할 때는 옷도 나이 들어 보이게 입고, 화장도 진하게 했다. 내 얄팍함이 드러날까 무섭기도 했고, '전문가'라는느낌을 내기 위해서였다. 간혹 누군가 적의 없이 "쌤은 몇살이에요? 물으면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강사로 별로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겉치레는 나를 힘들게 할 뿐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아는 만큼만 나누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니 강의가 재밌어졌다. 이제 수업에 도움이 된다면 나를 오픈하는 것은 무엇도 두렵지 않다. 심지어 "제가 이해도 더디고 모르는 게 많아서 쉽게 말합니다. 그래서 말을 잘 하는 거예요."라고 얘기한다. 격할 필요가 있을 땐 "제가 말을 잘하는 이유는, 무식해서입니다."라고 말 할 때도 있다. 정말이다. 나는 모르는 게 참 많다.
그런데 요즘 문득. 강사 말고, Feel通이라는 인간은 얼마나 정직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신발 끈 매는 시늉을 하며 머뭇거리는 아이 같은 마음, 누군가 만나기도 전에 상처받을까 봐 숨어버리는 빈약한 내 진심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까?
글쎄. 아직은 자신이 없다. 어쩌면 나는 강사의 권위를 입어야만 부족을 드러낼 수 있는 겁쟁이일지 모른다.
ㅡ04.
내겐 '제자' 라고 쓰고, '스승' 이라 읽는 사람들이 있다.
수업을 함께 해준 모든 분들이 그러한데 가끔은 짧은 만남이 긴 인연이 되기도 한다. 오늘 만난 친구는 방송아카데미에서 만난 수강생이었는데. 2년째 계속 도전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단 몇 명의 진출자 뒤엔 수많은 패자가 생기는 구조가 늘 안타까웠다. 나 또한 그 패자이기도 했고.
어느 순간, '그거 하지 마. 다른 넓은 세상이 많아' 라고 말하고픈 현실이 괴로워 업의 방향을 바꿨었다. 하지만 오늘 만남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강사'라는 이름의 오만일 것이다. 나 또한 지망생일때 "내가 해보니까 말야~"라는 말의 폭력을 수도없이 겪었다.
절박하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사람에겐 그저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 친구의 장점은 웃을 때 사람을 기분 좋게 해 준다는 것과 독특한 보이스컬러라 그걸 잊지 말라고 얘기해줬다. 너무 오랜만의 칭찬이라 감동이라며 울먹거리는데. 그런 경쟁 구조의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저렇게까지 풀이 죽어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 역시나 내 독선이겠지. 이걸 받아도 되나 싶은 맘으로 가져온 카네이션에 맘이 무거웠는데. 잠시 잊고 있던 본인의 장점을 되찾아준 답례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가졌던 많은 직업 중 '강사'를 그저 거쳐 가는 길로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었나 고민하게 된다.
오늘의 위안은, '직접 못하는 사람은 가르치고 못 가르치는 사람은 한다'는 얘기.
카네이션의 꽃말은 '잘남'이 아니라 '사랑'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