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저기서 두려워한다는 건 말 그대로 꺼려한다는 거고 가치판단이 개입된 말이 아니에요. 전쟁생황을 다룬 한문에는 '적의 매복이 두려워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는 식의 문장이 많이 나옵니다. 두려워 벌벌 떤 게 아니라 그냥 불리할 것을 우려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마 전략적인 판단이 개입된 말이고요.
한문은 영어와 비슷하게 표현에 감정적인 가치판단이 우리말에 비해 덜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great는 위대한, 으로 번역되지만 한국어에서 위대하다는 말은 현실에서 가치판단적이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그냥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를 패러디한 영화 제목이 <위대한 독재자>이죠. 그는 히틀러를 좋게 보지않았습니다. 그 반대죠. 두려워한다는 것은 기백이 부족한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피하려는 상황 전반을 뜻합니다. 한문에서 이 뜻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실제로도 충무공께서 배설을 질책하시면서 하는 말씀은 "수사께서는 왜 피하려고만 하시오"입니다. 이 뜻은 피하려는 태도 전반입니다. 이것으로 배설의 당시 용기나 감정 상태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해당 본문이 설사 편파적이라 가정한 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부분이 자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진이라는 여인과 세 번 관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충무공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의도적인 목적을 갖고 접근한 '가설'입니다. 당사자가 잤다고 해서 잤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 여백에 횟수까지 표기했어요. 이걸 무시하면 정설이 왜 존재하며 기록이 무슨 가치를 가질까요. 그건 역사가 아니죠.
수백년 전의 무관이 한 여성과 하루에 세 번 관계하면 안 되나요? 이 사실이 불쾌하시면 존재하지 않는 제 글의 편파성을 주장하실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에 대한 koyuh8님의 입장을 재조정하시면 될 일입니다. 만약 충무공의 활발했던 성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분에 대한 개인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koyuh8님의 자유입니다. 단 저는 그분의 섹스라이프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충무공의 섹스가 그렇게 문제이고, 특정 문장에만 천착해서 그분의 섹스를 줄이려는 분들이 있을까요? 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난중일기에 기록된 섹스라이프는, 박정희 독재 시절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자유로운 성생활이 성웅의 품위를 깎아내린다는, 군부독재집단의 품위없는 발상 때문이었죠. 요정과 안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작 그들의 성생활은 건전하지 않았죠. 에두아르드 푹스가 지적했듯 언제나 문란한 지배층이 윤리적으로 양순한 피지배층을 원합니다. 충무공의 성생활에 보수적인 메스를 대려고 하는 도덕주의는 협소할 뿐 아니라 별로 건전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RE: [역사잡담]영웅과 잡놈 사이, 조선 공무원 '배설(裵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