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PEN클럽 공모전(일기)에 참가하는 일기가 아닙니다. 몇 주 전 지나가며 댓글로 주고 받던 님과의 했던 '언젠가 저도 일기 써볼께요' 약속이 생각나서 겸사겸사 일기를 씁니다. 약속은 사소한 것이라도 가급적 지켜야 하니깐요. 안물안궁인 것은 압니다만 겸사겸사
님 번호 일기를 저도 써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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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금) 나의 계획은 오전에 급한 일을 끝내고 오후에 일찍 퇴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날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후에 갑자기 바빠져 퇴근이 늦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8 치앙마이 제주에 옵니다> 행사에 겨우 참가했다. 제주 성산에 위치한 플레이스캠프 제주에서 치앙마이에서 찾아온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데 얼마 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인지. 최근에 이렇게까지 이런 행사의 즐거움을 찾아다닌 적을 생각해보니 오랜만이다.
애프터 파티까지 참가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0시가 다 되어간다. 밀린 댓글과 대댓글, 님과 카톡, 약속했던 포스팅을 올리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이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맑은 고딕체, 10포인트, 2 ~ 3페이지 글을 쓰는데 별 내용 아닌 글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가 타이핑이 느리진 않다. 다만... 생각이 많아서 남들보다 아마 수차례 쓰고 지우고 하는 일이 빈번하다. 내 지인들은 알고 있다. 내가 말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 누군가가 내게 질문하면 생각이 필요한 질문에 나는 답변이 한 템포 늦다. 내가 뭔가 확실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생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냥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또한 받은 질문에 거짓말을 하기 싫고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는 없는 애매한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지 고민하느랴 대답이 느려질 수도 있다. 약속한 포스팅을 올리고 나서야 샤워를 하고 잠이 든다. 더블 사이즈의 침대에 푹신한 시몬스 매트리스와 베개... 오늘도 숙면을 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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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깼다. 몸을 뒤척이면서 더 자려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웬만큼 피곤해서는 낮잠을 못자는 체질이다. 아무리 낮잠 자려고 노력해도 낮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가급적 밤과 아침 사이에 충분한 잠을 자려고 한다. 아침 6시에 잠들어도 9시면 잠이 깬다. 쉬는 날 늦잠을 자도 보통 8시면 눈을 뜬다. 그래서 지금 더 자야 한다. 30분간 그렇게 잠을 더 자려고 사투를 벌이다가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아이고, 그래도 아침 6시다.
아침 샤워를 다시 한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서인지 온 몸으로 느껴지는 물줄기의 압력에 기분이 참 좋다. 거울을 보고 피식 웃는다. 그래, 이런 것이 소소한 행복이지. 샤워가 끝났으니 이제 짐정리를 한다. 어제 밤에 꺼내놓은 것들을 캐리어에 다 담고 당장이라도 체크아웃할 수 있게 준비를 모두 마친다. 잊지 말고 내가 몸을 뉘었던 매트리스에 머리카락이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시트와 베개 등을 처음 보았던 그 상태로 정리한다. 머리 맡 책상 위도 정리한다. 다 쓴 젖어있는 수건은 욕조가 없는 관계로 세면대 위에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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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할까 고민하다 이렇게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차에 캐리어를 싣고 성산 일출봉으로 향한다. 이른 시간에 오픈한 분식점에서 해물라면을 먹고 성산 일출봉을 바라본다. 안개가 자욱하다. 몇 번이나 올라가봤고 오래 전 새해맞이 해돋이까지 본 경험자라 오늘 굳이 올라가려 노력하진 않는다. 사람들의 거의 없는 장소에서 자연을 느끼고 싶어 장소를 이동한다. 안개 낀 성산일출봉, 모래와 바다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한다.
해무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지만 자욱한 이 풍경을 보고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 그렇게 혼자 바닥에 걸터앉아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한참의 시간을 보낸다. 이른 아침 습도가 높아 짙게 맡아지는 말똥 냄새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똥도 이 자연의 일부니깐 하며 혼자 피식 웃어 넘긴다. Steepshot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 날 아침의 이 사진을 업로드하려 했으나 계속 에러가 발생해서 포기했다. 사실 이 사진 한장이 지난번 월정리 사진처럼 업로드 완료되었다면 이렇게까지 긴 일기는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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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왔다. 시계를 바라보니 9시가 넘었다. 체크아웃은 11시. 돌아다니고 싶어 숙소에서 제공한 개봉하지 않은 삼다수 생수 1병과 백팩을 메고 체크아웃하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제 애프터 파티에서 만났던 호로요이 협찬 관계자인 여성분이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나를 쳐다본다. 나쁜 사람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불필요한 행동으로 느껴져 하지 않았다. 여자 분이 뒤돌아서 나를 쳐다본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 때문에 쳐다본 것인지 전혀 인지 못하다가 두~세번 반복되니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말을 꺼냈다. “혹시 어제 애프터 파티 때~”...
내가 프리마켓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의 공백 시간에 대해 걱정이라 지난 번에도 갔던 <월정리 해변>을 간다고 하자 <비자림> 방문을 추천해주신다. 트래킹이나 숲을 좋아하지만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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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인생의 고민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OSPREY 백팩에 마치 비박할 것처럼 이것 저것 쑤셔넣고(약 20kg 내외) 서귀포에서 바다가 가까운 길로만 제주시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었던 길... 마침 뙤약볕에 목이 마르고 다리가 슬슬 아파올 무렵에 내 옆을 지나가는 렌트카를 보고 살짝 부러웠다. 고민이 있어 스스로 무거운 짐을 메고 고생을 자처하면서 렌트카를 부러워하다니... 내 자신이 참 웃겼다.
그 뒤로 그 길이 은근히 좋아서 제주도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항상 그 길이 생각나곤 했다. 오늘도 <비자림>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성산에서 월정리 해변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드라이브 한다. 뒤에 따라오는 차량이 없어 시속 30~40Km의 속도로 서서히 주변 풍경을 감상한다. 물론 <비자림>을 가야해서 세화에 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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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손바닥을 활짝 편다. 그리고 나뭇가지들과 나뭇잎들을 손바닥으로 스쳐 지나는 느낌을 느끼며 산책한다. 손바닥을 통해서 느껴지는 그 느낌들이 참 좋다. 특히나 부드럽게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의 그 부드러움은 형언할 수가 없다. 사람이 두 팔로 안을 수도 없는 굵은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산책한다. 물론 좁은 오솔길에서는 통행에 지장을 주면 나무를 만지면서 가기는 힘들어 손바닥으로만 그 감촉을 느끼며 지나간다. 키 작고,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아저씨라서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거라고? 아니, 난 10대 때부터 그랬다.
양말을 벗는다. 발바닥을 통해서 흙을 느끼면서 걷고 싶었는데 금방 끝냈다. “맨발로 걷지 마세요”라는 규정을 보지도 못했고 나 이외에도 맨발로 걷는 몇 분을 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맨발로 걸으면 안될 것 같다. 항상 불길한 예감은 거의 들어맞는다는 경험이 있으니 얼른 신발을 싣는다. 아쉽지만 나중에 바다가면 해변에서나 맨발로 걸어야겠다.
추가사항
비자림은 맨발로 걷는 것을 권장하는 것 같다. 다음에 들르면 필히 전 코스 맨발로 걷는 것을 도전해 보리라. 출처 - [제주도민일보] 비자림, 이제 맨발로 걸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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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같은 관광지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멀리하겠어라는 의미이지만 오늘과 같은 날, 내게는 필요하다. 가까운 곳에 여러 맛집이 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혼자 방문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곳들이다. 우리나라가 아직까지는 합석 문화가 일반적이지 않아 나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도 미안하고 그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까운 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kr-youth들이 많이 찾는 분식집을 찾아간다. 조금만 늦었어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옥상의 자리를 놓칠 뻔 했다. 옥상의 테이블에는 역시나 20대 커플들과 우정여행을 온 여자분들, 단란한 가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옥상의 전망은 내가 상상했던 그런 전망은 아니었다. 다신 오지 말아야지 혹시라도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포장한 음식을 들고 바다가 가까운 벤치에 앉아서 먹어야겠다.
좀 더 여유를 느끼고 싶었으나 리조트의 차량에서 나름 럭셔리하게 차려 입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족들이 내려서 내 등 뒤에서 자리 선점에 관한 대화를 한국어+영어로 섞어서 나누고 계셔서... 다 먹자마자 일어섰다. 그렇다. 돈이 많든 적든 간에 이러한 소소한 행복은 그들에게도 필요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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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 동네를 한바퀴 돌다 아침에 떠나왔던 어제의 그 장소로 돌아왔다. 광장에서는 프리마켓 준비중인데 바람이 제법 강하다. 한 바퀴 둘러보며 분위기를 파악한다. 어제 만났던 분들은 다들 프리마켓 준비하느랴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다. 살만한 것이 있나 보는데... 아직 진열이 다 된 상태가 아니라서인지 살만한 것이 안보인다. 이 때, 오후에 약속했던 시간이 앞당겨졌다는 문자가 왔다. 그렇게 그 곳을 떠나 오후 일정을 소화하러 갔는데...
선약으로 이어진 오후 일정은 간단하게 저녁식사 마치고 헤어지는 것이 원래 내 계획이었다. 그런데 저녁식사 때 1명이 갑자기 추가되어 3명이 함께 식사를 하고, 식사 후 자리를 옮겨 수제 맥주를 마실 때는 2명이 추가되어 5명이 함께했다. 다시 자리를 옮겨 치맥을 하게 되었을 때는 4명이 함께 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여러차례 반복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