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재 율곡 이이 선생의 9번 장원급제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현실참여적인 실천적 학문으로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율곡 이이, 기호학파를 형성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을 주도한 율곡은 1564년(명종 19년) 29세에 문과(文科)의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에 모두 장원(壯元)으로 합격하여 '삼장 장원(三場狀元)'으로 불렸으며, 또 그 해에 생원시(生員試)에 장원하고 이어 진사시(進士試)에 고등으로 합격하였으며, 문과에도 모두 장원을 하니, 대개 전후에 장원을 차지한 것이 모두 아홉 번이었으므로 당시에 '구장 장원(九場壯元), 구도 장원(九度壯元)'이라 일컬어졌다고 합니다.
2. 천재 가문에 또 하나의 천재 이우
조선 왕조 천재를 키운 신사임당 가문이 배출한 또 또 한명의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율곡 이이 선생의 동생 이우(李瑀). 그는 조선조 통틀어 시,서,화,금(詩,書,畵,琴)에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4절로 불려지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천불여이물(天不與二物)이라 하여 하늘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용모가 수려하면 머리가 부족하고 머리가 뛰어나면 행동이 부족하고 행동이 뛰어나면 지성이 모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그는 그림은 물론 시와 글 가야금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어머니 신사임당의 화풍을 따라 초충(草蟲), 사군자 등을 잘 그렸으며 특히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벌레인줄 알고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3. 83세에 최고령 과거급제 박문규
조선왕조 최고령 과거 급제자 박문규(朴文逵)는 83세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당당하게 최고령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한 박문규는 최고령 급제라는 새로운 기록을 역사에 남긴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습니다. 조선시대는 문신중심의 사회이고 문관에게 가문의 영광과 명예가 주어지며 부의 축적 등 수 많은 특전이 부여되어 양반들의 유일한 출세길이었기에 모두 과거에 매달렸습니다. 박문규는 1887년에 급제하여 고종의 특명으로 병조참의를 제수 받았으나 지상과제의 한을 풀어서인지 그 이듬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4. 조선왕조 최연소 급제자(만14세) 이건창
조선시대 20세 미만 급제자는 30명이며, 그중 최연소 급제자는 1866년(고종30년) 강화도 별시문과에서 6명중 5등으로 뽑힌 만14세의 이건창(李建昌)이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건창은 판서 이시원(李是遠)의 손자로 강화 출생이며 5세에 문장을 구사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도 너무 일찍 급제하였다 하여 4년뒤인 만18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의 벼슬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건창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천성이 강직하여 불의를 보면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으로 암행어사 때는 충청감사 조병식(趙秉式)의 비리를 낱낱이 들춰 내다가 도리어 모함을 받고 1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저술에 몰두하여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당의통략]을 저술하는등 조선 말기의 대문장가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5. 76세에 장가 들고 99세까지 장수한 홍유손
조선시대는 사내아이는 보통 10세를 넘으면 장가를 가게 되는데, 무려 76세의 나이에 첫 장가를 가고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홍유손(洪裕孫). 그는 소위 죽림칠현으로 속세를 떠난 청담파를 자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76세에 장가를 들어 아들 지성을 낳고 99세까지 살다 간 조선시대 기인 중의 한 명이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 성종 초부터 남효온, 홍유손 등과 만나 동지회를 조직하고, 동대문 근처 대밭 속에 자주 모여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하며 시문과 술과 가무로 소일했다. 벼슬과 명리를 멀리하였으므로, 청담파(淸談派)라 부른다.
6.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요즘 현대에도 4-5개국 언어를 구사하면 대단한 천재라고 부르는데 조선조에 영의정을 지낸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는 7개 국어를 구사 했다고 합니다. 학자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는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 최초의 일본 관련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저술하는 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특히 설총(薛聰)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등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 까지도 터득했다고 합니다. 명문가 답게일제하 독립투쟁의 주역들인 단재 신채호(申采浩), 신규식(申圭植) 선생 등이 신숙주의 후손들입니다.
7.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인 어우동
지금도 그 이름이 회자되는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왕족 출신인 어우동(於于同)은 성종 때의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朴允昌)의 딸로 태어났으며, 이름도 책마다 다른데 [용재총화]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이라고 표기 되어있다고 합니다. 어우동의 시댁은 세종대왕의 바로 위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습니다. 어우동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는 즉시 그 자리에서 본능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나오는데, 특히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녀를 폄하하기 위한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몸에 자신의 이름을 문신하기를 강요하였다고 하는데 김종직과 이덕승의 탄핵을 받고나중에는 도승지 김계창(金季昌)의 줄기찬 탄핵으로 의금부의 문초 끝에 삶의 여정을 끝내고야 말았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시와 서화에 능했다고 하는데 시대를 잘 못 만난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었을까...생각해봅니다.
오늘은 조선실록에 나오는 진기한 기록들을 알아봤습니다.
-개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