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글을 두 세 개 이상 읽은 분이라면 내가 뭘 쓰는지 아실 것이다. 난 아무거나 쓴다. 핵심은 내 관점이나 문체이다. 소재는 내가 다룰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물론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동네 과수원 크기이고 다룰 수 없는 범위는 과수원을 뺀 지구 전체이다. 나는 매 번 최선을 다해서 쓰지만 읽게 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내 글을 만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여유로운 시간에 커피 한 잔을 가져와 마음 먹고 여러 글들을 읽어주시려는 타이밍에 운 좋게 내 것이 걸릴지, 습관적으로 마이피드를 확인하다가 우연한 클릭으로 내 글을 접하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작성에 있어 항상 고무적인 정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적든지
"이런 것을 왜 쓰냐"는 내 글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사실은 의문이라기보다 부정을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질문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2
나는 페이스북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태도로 SNS 활동을 했다. 이름은 얼굴책이지만 나는 내 글도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단상도 적었고 서평도 적었다. 세태에 화가 날 때는 그 감정을 풀었고 너무 큰 슬픔이 찾아 왔을 때도 내 나름의 소통 창구는 그 곳이었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장면은
모두의 바쁜 엄지 손가락이 내 글 같은 것은 그냥 훑어 넘기는 모습들..
물론 모두가 내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읽지 않음이 읽음보다 자연스럽다. 스팀잇이 이상한거다..사실...
#3
나는 글만 보면 진지충이나 장문충이지만 사실 대단히 가벼운 입담의 소유자이다. 막 나대는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엄청 웃기다. (나는 못 생겼다는 말보다 안 웃기다는 말을 더 싫어한다.) 사교 모임에서 절대로 진지한 주제를 입에 담지 않는다. 삶과 사랑과 죽음과 사람과 낭만을 논할만한 제비다방(이상과 금홍이 종로에 차렸던)이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음을 11년 전에 알고 나는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절대로 나가서 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지인들은 나의 페북 활동이 지적 허영심의 발로라고만 생각한 듯 하다. 소위, 있어 보이려는 유치한 짓을 내가 페이스북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면전에서 없었을 뿐, 늘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너 그런 거 페북에 왜 쓰는거야? 일기장에 써도 되잖아."
#4
피해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했던 이유가 있다. 내 지인들은 절대로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학교 때 그 흔한 학회나 동아리조차 없었다. 자연스럽게 카톡이나 페북 친구가 남들에 비해 적은 편인데 그래서 더욱 내가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이들이 전혀 내 글에 반응을 하지 않았다.
'좋아요'는 그렇게도 엄숙하고 장엄하며 높은 판단 기준을 거치는 결과물이었던가? 내가 아무 글이나 싸질러도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줘야 한다는 논리가 결코 아니다. 내 사진이나 단순한 근황이나 평소에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개드립을 쓰면 수 십개씩 순식간에 생기는 좋아요는 유독 내가 공들여 쓴 글에만 전혀 달리지 않았다.
"내 글은, 내 생각은, 내 관점은 누구의 공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이다지도 무가치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한 두 사람의 끝도 없는 지지로 나는 자존감을 유지했다.
#5
내 사촌 동생은 내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글은 제 정신으로는 읽을 수가 없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내 친구들은 나에게 말한다.
"야 그냥 단순하게 살아. 혼자만 심각하지 말고"
그 친구들이 그런 의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모욕감이 들었다. 왜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드러내면 안되는가? 구어체에서 쓰지 않는 말들을 글에 적는다고 해서 잘난 척인가? 심지어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왜 내가 글을 올리는 행위가 남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지 않는다.
#6
내가 다른 수많은 현상들에 대해서 가지는 비평적 견해와는 다르게,
또 사람들에게 감성팔이를 해서
보팅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느끼면서까지,
유독 스팀잇에 열광하고 이 것을 찬양하는 이유는
위에 적은 나의 삶이 반영되어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주는 가치와 의미가 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거= 스펙을 쌓거나 돈을 벌거나 눈에 보이는 이익이 되지도 않는 것
왜= 노력하는 삶도 아니면서 남들한테 너 아는 거 많다고, 너는 생각이 다르다고 잘난척 하려고
쓰는거야= 그렇게 쓰고 싶으면 일기장에 쓰고 혼자 봐도 되는데 남들 보는 곳에 굳이 쓰는거야
환청처럼 들려서 글을 쓰는 것 자체로 죄책감이 들게 하던 시절을 벗어나게 해주어서, 더군다나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또는 위로해주시고 이해해주셔서..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제 이야기에 가치를 부여해주셔서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