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도 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부풀어 있다.'면 나는 얼마만큼 행복한가? 내 상황을 비교적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그들의 확신과 나의 행복감은 비례할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기는 사물들이 나에게 충만하다면, '내가 행복할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감이나 단정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나도 '행복하다'는 착각, 안도, 또는 인식을 하게 된다.
행복은 '타인이 나를 얼마나 행복한 사람으로 보는지'로 판별되곤 한다.
#2
이 것을 부정해보자. 100명이나 1000명이 또는 만 명이나 십 만명이 나를 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 모두가 나에게서 행복의 이유와 조건과 근거를 발견하는데, 나는 무엇을 내세워 내가 '행복하지 않음'을 증명할 것인가? 단순히, "내 마음이 그래. 영 쓸쓸하고 불편한 것이 행복하지가 않네"라는 말로 나의 불행을 입증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가? 이는
행복하면서 불행을 표상하는 기만 행위인가
대체로 행복하지만 간혹 드는 순간의 불만감을 강조한 것인가
아니면 참말로 불행한 것인가
#3
나는 항상 내 심리 상태를 살핀다. 내가 들떠 있다면 무엇을 연유로 이러는지 되짚는다.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원인 모를 조울기질'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조용히 차분하게, 작고 세밀하게 찾아보면 내가 지금 이 순간 들떠 있거나 침울한 이유는 발견 되기 마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어있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보냈으면 나는 그 날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것일까? 아니면, 취침시간 포함 20시간 정도는 신나거나 우울하지 않았고 남은 4시간 중에 3시간 동안 즐거웠으면 나는 행복한 하루를 산 것일까? 이렇게 하루하루를 계산해 나가면 '행복한 인생'을 완성할 수 있을까?
#4
나는 네팔에 갔었다. 사실 그 일은 네팔이 아니라 한국, 미국, 태국, 베트남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네팔이라는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은 네팔에서 일어났다. 동행한 교수님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내뱉었다. 다 듣고나서 그 분은
"이야기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걸 보니, 자네에게 중요한 것은 행복인가보군."
나는 그 날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다.
나에게 행복이란 '모두에게 그 것을 추구 할 이유와 명분과 권리가 충분하고도 넘치는,
누구나 그 것을 위해 삶을 사는 것이 분명하고 당연한' 무결점의 만능 가치였다.
그 분의 말에서 '행복'이
'내 주관적인 판단에 비교적 덜떨어지고 덜 중요하며 가끔 무능해 보이는 단어들'과도
'특정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하나.
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삶은 안락함이나 쾌락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불편이나 고난과 가까워 보였으며 그러면서도 '후자의 생활이 행복하다'는 말로 나같은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주지도 않았기에, 나는 그의 말에서 모든 사람의 인생 최고 가치가 '행복'이 아닐 수 있음을 믿게 되었다. 내가 그러한 인식의 화신을 눈 앞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5
그 날 이후 변했다. 나에게는 '행복회로'가 긴밀히 작동되지 않는다. 내가 행복을 더 이상 추구할 가치가 없는 단어라고 규정지은 염세주의자가 되서가 아니다.
현재보다 어떤 의미로든 무엇이든 좋아져 있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아서
지금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내가,
물질적 환경의 변화에 기반해서 감정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불행회로가 예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보다 불충분한 상태가 되면 나는 상당한 박탈감을 느낄 듯 하니까.)
불행회로가 예민하여 더 안 좋은 상태보다는 좋은,
현재의 상태에서 오히려 행복감에 가까운 것을 느끼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기에
나는 행복회로가 고장 난 사람이다.
#6
지금 글을 쓰면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장면을 떠올리면 기쁘다.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나에게 순수하게 즐거움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행복을 추구하든 추구하지 않든 글쓰는 행위는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다. 내가 가입인사에 적었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허세 작렬을 위한 주장은 아니었다. 내가 실제로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는 내용이다. 나는 행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산다.
르네 마그리트의 '저무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