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자기가 주문으로 불러낸 저승 사자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술사와도 같다
부르주아 사회의 어떤 단면들은 자본주의 그 자체를 표상한다. 자본주의는 ‘돈’을 이 세상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가치로 만들었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 중 다수는 점점 더 많은 이윤을 원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더 큰 공장, 더 많은 노동자, 더 효율적인 생산과 판매를 원한다. 돈을 더 많이 가진다면 자신이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많은 돈의 출처는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기인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고 노동자들의 복리후생에는 큰 관심이 없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모든 노동가치에 대한 보답을 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 계층이 맹목적인 확장에 집착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문제이지만, 각 나라의 경제 대공황을 통해 그 자체의 한계성 또한 이미 드러냈다. 경제를 독보적 가치로 만들어 버린 체제 속에서 그 유일신이 퇴보하고 망가졌을 때, 그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 역사상 반복 됐다. 그렇기에 자기가 불러낸 저승 사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의미하고 그 것으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이가 마술사인 자본가 계층이다.
(최상단부는 '공산당 선언' 중 일부이다. 힘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본래 문체는 상당히 난삽하다. 그 어떤 개념이나 정의에 관해서도 주관적 해석을 거치지 않는 적이 없고 그 과정이 전부 글에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가 자본론에서 그의 사유를 따라가며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공산당 선언'은 자본론에 비해 명확하고 간결하다. 추론 과정을 생략한 채로 결론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 판단에 행동가이기보다 사유가였던 마르크스의 성정은 자본론에 여실히 드러난다.)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과 자본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재산의 규모를 이용해 다시 재산을 (빠르게 많이) 늘리고 수중의 돈이 구체적 용도를 가지기보다 그 자체로 온전히 남고 혹은 확장되는 일이 더 중요해지면 돈이 자본이 되고 '이런 식으로 돈을 운용하는 사람'이 자본가이다.
마르크스를 살짝 꺼내고 '자본가 이야기'를 함이 꽤나 부담스럽다. 내 마음 속의 죽창을 글로 꺼낼 것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뉴스에 등장하는 못된 자본가들만큼이나 착한 자본가가 많다. 더구나 돈으로 돈을 불리는 일은 대부분의 현대인이 하고 있는 재테크에 속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재산을 모아놓는 일 역시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돈이 자본이 되고 자본가로서 돈을 운용한다면 축하할 일이다. 문제는 '자본의 인격화'이다.
지상과제는 오직 자본의 축적과 확대 뿐이어서 오늘 축적한 자본은 내일 더 큰 축적을 위함이고 내일 이루어지는 자본의 확장은 그 다음 날의 더 큰 확장을 위한 준비일 뿐인 상태
마르크스가 파악한 자본의 속성은 위와 같은데 이것이 인격화 된 이들이 '자본가'라고 그는 정의한다. 나는 확실히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팀잇의 자본가
결국 이 부분을 위해 긴 서두가 필요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에 대해서 극단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스팀잇의 자본가들을 본다면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스팀잇에서 드러나는 갈등 중 큰 축은 '자본가(고래)의 스파 운용 방식'에 대한 것이다. 갖가지 논점에 대한 설명이나 가치판단은 생략하겠다.
여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본의 힘만으로 윽박지르고 누군가를 핍박하는 고래를 아직 본 적이 없다.
그것이 과연 '다운보팅'이라는 유일한 시스템적 제재의 효과일까? 자신이 많이 가졌다면 그 것의 축적과 확장만 신경쓰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겠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 방법들과 각각의 영향에 있어 견해 차이가 있지만 나는
많은 고래들에게 '필요 이상 또는 사회 일반 이상'의 선의가 있다고 느낀다.
스팀잇에서 그들의 선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이미 필요나 사회 일반 수준을 초과한 것들임에도 온당한 (긍정적)평가를 받지 못 한다. 몇몇의 거대한 선의에 우리는 무감각하고 일상화 된 감사만을 보내며 내가 참여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그 또한 선의로 시작된)이익 분배 행위를 배척한다. 하지만 이 공간에 마르크스가 그렸던 탐욕의 화신인 자본가는 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하다.
나는 스팀잇을 좋아한다
많은 구성원의 말과 행동이 세상과는 달리 '자본 편향적'이지 않아서 좋다. 하지만 이는 자본 편향을 배척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위에서 서술한 '자본의 인격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자본 추구가 이 곳에서 적정한 기준으로 정착하는 모습에 놀랍고 감동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편향이 이 곳의 성격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오해오바하고 있는 것인가? 같은 스팀잇, 같은 커뮤니티 안에서도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일 듯 하기 때문에 내 경험과 소회를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
일일이 떠올리지 않아도 꽤 여러 번 스팀잇을 찬양했다. 찬양의 이유는 늘 같았다. '선의와 사람이 있는 곳' 이런 구호로 바깥의 누구를 꼬셔 올 수 있을까? 누가 믿기나 할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 이야기 해주면 선의의 주체들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지을테고, 시스템적으로 그들이 착한 행위로 사익을 극대화 할 방도가 없고 마음만으로 한 행동이라고 설명하면 듣지를 않을 것이다.
아마 스팀잇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시기는 다시 스팀 가격이 오르고 올라, 말그대로 스팀잇이 '스팀이라는 세도가(勢道家) 혹은 부잣집'의 초입 역할을 하게 될 때일 것이다.
나는 온갖 군상이 모여 활기 있어진 스팀잇 저자거리를 상상한다. 지체높은 양반까지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저자거리 한 구석에 구멍 가게 하나 정도는 차리고 있을 나의 위상도 꿈꾼다. 그 때는 지난 2년 간 스팀잇에서 나오고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고 묻혀지기를 반복했던 화제들이 또 등장하고 토론이 열릴 것이다. 다시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이 곳을 비난하고 떠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남은 사람은 그 때도 남을 것이고 또 다른 우리들이 그 후의 2년, 또다른 2년을 우리와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늘어가면 된다. 스팀시티가 스팀나라가 되고 스팀대륙도 되면 좋겠다.
처음에 서로가 조금은 수줍고 좀 많이 예의 바르고 그러다가 일면식 없이도 마이쮸 하나 반찬 하나 나누는 이 곳의 인심에 초심자들이 동요(動搖)하고 동화(同化)하기를 바란다. Steemitlove 프로젝트 없이도 다시 피드가 스팀잇 사랑글로 도배되는 날을 기다린다. 아마 곧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