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 늦게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니 잠깐 내려 오라고 한다.
'연락도 없이?... 한 잔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츄리닝 차림으로 내려간다.
이 친구 만나자마자 차 트렁크를 열더니, 아이스박스를 꺼내 건낸다.
“뭐냐?”
“김치”
“웬 김치?”
“설 선물로 받았는데, 나는 쓸 모가 없잖아, 시어지기 전에 너 줄려구”
아니, 김치 전해주려 늦은 시간에 차를 1시간씩이나 몰고 왔다는 말인가?
택배로 보내면 기름값도 덜 들고, 훨씬 편할텐데...
겸사겸사 친구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걸게다. 그냥 고맙다.
이 녀석은 뒤늦게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10년 넘게 공부하다, 마흔이 훌쩍 넘어 한국에 돌아왔다. 지금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공부하느라 혼기를 놓친 완전 노총각이다. 혼자 사니, 김치가 많이 필요없을 것도 같다.
“임마,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김치가 필요할 거 아냐, 반은 그냥 가져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출출할 땐 햄버거 같은 거 먹는 게 오히려 편하더라구”라며, 한사코 자기는 김치가 필요없다고 우긴다.
“집에 들어가 차 한 잔 하고 가라”
“늦은 시간이라 불편하잖아”
“막걸리 한잔 할까?”
“차 때문에 안돼”
그냥 운동삼아 아파트 주변을 좀 걷자고 한다.
늦은 저녁, 이런저런 우스개 소리하며, 좀 춥지만 한동안 함께 걸었다.
딱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함께 걷는 게 좋다.
“임마, 김치 전해주러 오는 시간에, 이쁜 처자나 좀 쫓아다녀”
“인연이 있으면 만나겠지”
새해에는, 착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첫눈처럼 포근하게 찾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