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 달 전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교 동기였다. 결혼을 한다며 웨딩 사진을 부탁했다. 평생 한 번인 웨딩 촬영이기에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거듭 부탁하기에 수락했다. 나름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계획을 짰다. 그리고 촬영을 사흘 앞둔 저녁, 전화가 왔다. 이틀이었던 촬영 일정을 사흘로 늘리고 싶다 했다. 일정에 관한 얘기를 하다 이전까지 쭉 없었던 화제를 용기내어 말을 꺼냈다.
"넌 페이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난 니가 친구니까 수고비 명목으로 xx만원 정도 생각했는데?"
잠깐 망설였다. 내 하루 촬영비로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받는 금액을 얘기해주며 어렵게 입을 뗐다. 친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너무 비싸다며 그럼 자기가 제주도 스냅 촬영 비용을 알아본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싸게 촬영을 하려고 날 찾은 거야?"
친구는 내가 사진 찍는걸 좋아하니까 이 정도로 부탁하면 될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난 직업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전에 가끔 통화할 때도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고 얘기했기에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잊어버렸거나.
"그 정도면 나도 촬영은 못하겠다. 미리 좀 얘기해주지."
난 촬영을 부탁하는 쪽이 먼저 얘기를 꺼냈어야 하는 문제 아니냐고, 하도 얘기가 없길래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럼 예산에 맞춰서 하루라도 찍어줄 수는 있다고 얘기하니 그 친구가 말했다.
"아니야, 이미 의가 상해버렸는데 어떻게 그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취소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가 상했다고..? 친구가 생각하는 '의'는 무엇이었을까. 친구가 사진을 찍으면 싼값에, 혹은 돈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줘야 하고, 친구가 디자인을 하면 간단한 것들 좀 부탁한다며 공짜로 의뢰해도 들어주는게 '의'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의'를 검색해봤다.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
난 친구 사이의 도리를 저버린 것일까. 그게 '의'라면 조금 슬퍼질 것 같다. '친구는 싼값을 원했던 만큼 나를 싼 인연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했다.
02
목포에 내려온지 2년이 되어간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단계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본래 느긋한 성격이라 물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다만 그 물이 역류도 했다가 멀리 돌아나가기도 했다가 우여곡절이 많을 뿐.
그런데 이제는 내 뒤에 거대한 폭포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두렵고 무서운 느낌. 프리랜서일을 하다 보니 일이 없을 때도 종종 있어 수입은 불규칙하고, 고정적인 일을 찾자니 나이의 문턱에 걸려 만만치 않다. 지방이라 더 어려운 듯하다.
03
목포에 내려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사람이다. 정말 좋은 일을 하는 동생들을 알게 됐고 이곳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방의 청년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이다. 당장 돈이 나오지는 않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단체 티의 뒷면에는 '니 맘대로 해'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문제는 코앞에 닥쳐있다. 결국, 문제는 '돈'으로 수렴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지만 반대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도 강해졌다. 둘을 모두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렵다.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라는 것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지난겨울 일이 뚝 끊긴 시기에 스팀잇에 들어온 이유도 처음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은 아직도 존재지만 바라보기 싫어 눈을 가렸다. 나를 자주 봐온 사람들은 새벽에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불안감으로 인한 불면증의 산물인지, 아니면 내가 쌓아온 생활방식의 일부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창밖에 다시 해가 뜨고 있다.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