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홍콩에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
자꾸, 장면들이 떠오르는 영화.
친구들과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청킹맨션 'chungking mansion' 에서 하룻밤 잤었다.
일단, 건물이 너무 낡고, 무엇보다 건물에 있는 온갖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가씨, 아가씨'하면서 말을 거는게 무서워서 하루 빨리 이 건물을 탈출하자고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홍콩에 갔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홍콩 여행을 하면서 '아날로그 파리, 아날로그 제주'가 있는 것 처럼 홍콩도 아날로크 필터가 있다면 뭔가 '푸르딩딩' 할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이 영화 전체적인 색감이 딱 그렇다. 뭔가 파-래.
영화를 보고나니까 진짜 홍콩 너무너무 가고싶다. 엄청 어수선하고, 낡고, 시끌시끌한 침사추이 뒷골목!
"시간과 공간"
영화에는 두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복경찰 223(금성무)가 나오는 에피소드 하나,
정복경찰 663(양조위)가 나오는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첫 번째 에피소드 키워드는 시간, 다음 에피소드는 공간이 되겠다.
(두 에피의 공통점은 두 남자 주인공 모두 너-무 잘생겼다는 것. 금성무 젊은 시절은 진짜 지구 부순다. 보는 내내 감탄함.)
나는 처음에 금성무 에피소드를 대강 듣고, 사진도 찾아보고 나서 영화를 본 것이라서 이 에피소드가 메인일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아쉬웠다. 663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이 절대적으로 길다.
Episode 1 - 시간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사복경찰 223(이름은 따로 나오지 않는다.)은 만우절 날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이 늘 그렇듯이, 223은 메이에게 전화하고, 매달리며 기다린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파랑파랑한 색감. 금성무 진짜 잘생겼다.>
223의 예전 여자친구 이름은 메이!
5월 MAY와 이름이 같다.
그는 메이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면서 5월 1일까지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겠다고 결심한다.
5월 1일은 헤어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인 동시에 본인의 생일이다.
결국 그녀에게 연락은 안오고 223은 사들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두 먹으면서 그녀를 잊는다. 이별이다.
<출처-네이버영화>
메이는 한 달 전 그와 헤어졌겠지만, 223은 이제야 진짜 이별을 했다.
진짜 공감돼서 노트북 붙잡고 거의 눈물 흘리기 직전까지 갔다.. ㅋㅋㅋㅋㅋ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 뭔가 웃기고, 보면서 내내 약간 우울했다.
나도 이런 적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이 안되고, 혼자 기다리다가 혼자 기한을 정한다.
'이 때까지 연락 안오면 진짜 끝이야.'
나랑 223이랑 다른 점은 223은 자신이 정한 기한을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
나는 내가 정한 기한을 기다리고, 연락이 안오면 한 번 더 정하고,
다시 한 번 정하고. 그랬었는데. 223은 나보단 좀 쿨한 것 같다.
5년 만난 여자를 한 달 기다리고, 정리하고,
또 새롭게 바에서 만난 여자를 평생 기억하고자 하고.
<출처 - 네이버 영화. 아 너무 잘생겼다. 말하기 입아프다.>
메이를 잊기로 한 223은 무작정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ㅋㅋㅋㅋ 이것도 나랑 너무 비슷하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 때 들어온 여자(임청하).
금발 가발을 쓰고,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이 여자는 마약 밀매 중개인이다.
둘은 하룻밤을 보내는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 감자튀김을 씹으면서 여자를 바라보는 금성무 눈빛은 진짜 ㅠㅠ
순수함이 막 뚝뚝 묻어남 .. 영화 색감이 파래서 그 장면이 더 청량하고, 예쁘고 그렇다.
마지막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깨끗한 구두가 어울린다며
구두를 벗겨서 닦아주고 떠나는데 ㅠㅠ 이 남자 진짜 ..ㅠㅠㅠ
메이는 미친거야!!! 이런 남자를 놓치다니 ㅠㅠㅠㅠㅠㅠ
그 다음 날, 여자는 223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걸 전해 들은 223은 그녀를 절대 잊지 못할 거라며 독백한다.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둘이 달달한 장면 하나 없었는데 나는 이 에피소드가 너-무 좋다.
진짜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고, 사랑의 유통기한은 분명 있지만.
우리는 모두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하니까.
그리고 처음 에피소드가 다음 에피소드보다 더 좋은 이유는
약간 더 홍콩이 잘 느껴진달까.
청킹맨션의 좁고 어수선한 복도, 이 때 약간 불안한 듯한 느낌들. 다양한 국적의 온갖 외국인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어지러운 영상 기법. 특히 여자가 사람들을 찾아서 죽이고 도망칠 때
심장 두구두구하게 만드는 카메라 워킹이 너어어어어무 좋다.
뭔가 진짜 홍콩이 마구마구 느껴져!!!!
양조위가 나오는 에피 2
Episode 2 - 공간
<출처-네이버영화>
처음 에피소드와 달리, 이번 에피소드는 더 밝고 해피엔딩이다.
정복경찰 663 (양조위)는 chungking express 에서 매일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사간다.
그 과정에서 페이는 663을 좋아하게 된다.
<출처-네이버영화>
여자친구 직업은 스튜어디스.
중간에 잠깐 전 여자친구와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장면이 이 영화 통틀어서 제일 달달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집이라는 공간은 그녀와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곧 애인은 663에게 이별을 고하고
Chungking express 점원 페이(왕페이)에게 편지와 열쇠를 663에게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별을 통보받은 663은 물에 젖은 수건을 보면서 울지말라고 위로하고,
인형에게 말을 걸고, 비누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 ㅋㅋㅋㅋ 귀엽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이는 열쇠를 돌려주는 대신, 그 열쇠를 가지고 매일 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옛 애인의 흔적들을 없앤다.
텍스트로 읽으니까 되게 무서운데, 영화를 보면 페이가 사랑스러워서
용서가 된다. ㅋㅋㅋㅋ 사실상 주거침입죄 .. ㅋㅋ
<출처 - 네이버 영화>
슬리퍼 색을 바꾸고, 인형을 바꾸고, 옷도 바꿔놓고.
정말 사소한 것들 부터 온통 바꿔놓는다. ㅋㅋ 써 놓으니까 좀 무섭네..
암튼 663이 무의식적으로 이별 할 수 있게, 전 애인을 잊을 수 있도록 하나 하나 바꾼다.
그리고 이 집에서 자신도 힐링받고! 진짜 보는 내내 내가 들킬까봐 조마조마 ..
하루는 그녀가 수돗물을 잠그지 않고 나가서 집이 물바다가 된다.
663은 그걸 치우면서
"이 집은 점점 감정을 가진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고 독백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페이가 몰래 들락날락한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이가 집에서 나가다가 결국 딱 걸린 날.
663은 그녀를 위해 다리를 주물러준다.
스튜어디스였던 예전 여자친구에게 늘 해줬었는데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위해 다리를 주무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때, 페이가 좋아하던 California Dreaming을 함께 들으면서 낮잠을 잔다.
달달한 장면.
어제 오늘, 계속 듣고 있는 노래.
이후, 633은 페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내일 여덟시에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고. 페이는 여덟시가 붐빌까봐 일찍 약속장소에 오는데,
그 날 비가 왔다. 진짜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맑은지 궁금했던 페이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러면서 633에게 쪽지를 보내는데, 함께 떠나자는 예약표였다.
633은 이별의 편지라고 생각하고 빗물속에 버리고, 다시 말려서 읽어보려하지만
이미 지워져버리고 .
일년 후,
663과 페이는 다시 만난다.
페이 - "어딜 가고 싶죠?"
"아무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 눈빛이 진짜......
진짜 진짜 페이를 사랑하는 것 같은 눈빛.
사람들은 정말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하고, 잊고, 새롭게 사랑한다.
이별에 있어서,
223은 통조림을 모으고, 먹고, 새로운 사랑을 찾고
633은 물건에게 말을 걸고. 또 633에겐 몰래 이별을 돕는 페이가 있었다.
223과 633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공통점은
이별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뭔가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내가 말을 잘 못해서.
표현을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
네이버 평점과 리뷰들, 그리고 명대사들을 읽는데
놓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꼭 다시 봐야지.
정말 정말 좋은 영화.
그리고 난 홍콩을 다시 가야겠다. 꼭.
네이버 리뷰를 보며 제일 마음에 드는 한 줄평.
'오늘 이 영화를 본 난, 영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너무 적절하다.
나도 처음으로 네이버 영화에 한 줄평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