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토큰은 중앙은행과는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사이인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현재의 블록체인 토큰이 법정화폐 경제와 Anchoring 되어 있는 연결 고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조금만 해결하면 블록체인 토큰도 얼마든지 중앙은행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늘 님께서 한국은 외환관리의 필요성으로 인해 결국 블록체인 토큰 규제에 있어 중국의 모델을 택할 것이라는 좋은 견해를 기술해 주신 바 있다. 일리 있는 말씀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하나의 주소에서 다른 주소로 토큰을 전송하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블록체인 토큰이 법정화폐로 어느 단계에선가 교환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현재의 블록체인 거래체계에서 예탁과 지급결제는 결국 분리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토큰을 거래하고 싶을 때는 KRW를 들고 거래소에 은행과 연결된 계좌를 생성한 뒤, 이 계좌에 KRW를 입금하여 토큰을 마련한다. 일반적으로 거래소는 한 덩어리의 큰 지갑에 고객들의 토큰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P2P 송금을 원할 경우 거래소 내부에 개인지갑 주소를 생성한 뒤, 이를 별도의 개인지갑 주소로 한 차례 더 송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거래소들이 노출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거래소가 거래, 예탁, 청산, 결제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해킹 피해를 당할 경우 거래소에 고객들의 토큰이 모두 예탁되어 있는 현재의 거래소 환경 상 내 토큰이 언제 도난당할 지 알 수 없으며, 정부의 입장에서도 토큰과 관련된 금융범죄가 발생할 경우 사후추적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예탁기능을 분리함으로써 토큰은 중앙은행과 손을 잡을 수 있다.
때문에, 중앙은행은 현재의 블록체인 토큰 거래체계에서 '예탁'과 '지급결제'의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서 간단하게 중앙은행이 어떻게 블록체인 토큰과 대화합을 이룰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위 그림은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 A가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 B에게 토큰을 송금하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거치는 절차이다. 설명의 직관화를 위해 거래소 지갑에서 개인 지갑으로의 별도 송금 등의 절차는 생략하였다. 이 경우 중앙은행과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는 절차는 A가 국내 거래소에서 KRW를 BTC로 환전한 거래뿐이다. 그 이후 A가 자신의 개인 지갑으로 BTC를 송금하여 B에게 전송하는 절차는 국가에서 알아챌 수가 없다. 아주 간단하게 환치기를 완료한 것이다. 그러나 거래소에 예탁된 BTC(또는 거래소 지갑의 개인별 할당 어드레스)가 중앙은행이 지정하는 별도의 예탁기관으로 이전된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국가에서 거래소 지갑의 주소를 기반으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거래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약 블록체인 시스템 상에서의 데이터 전송을 기술적으로 검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해당 토큰의 현금화를 차단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탁기능이 분리되어 각 개인의 토큰 월렛 어드레스가 중앙예탁기관에 보관되고 예탁기관에서는 거래가 일어나는 모든 블록을 저장한 뒤, 외환관리법상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이 한국의 IP 주소를 이용하여 해외의 IP를 이용하는 토큰 월렛 어드레스로 빠져나갔는지만 감시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거래소 지갑의 주소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지갑의 주소까지 모두 수집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지갑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협조를 요구할 것이고, 이를 해당 업체가 거부할 경우 정부는 해당 업체의 사이트를 블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Warning.kr 이라는 훌륭한 수단을 마주한 바 있다.)
중앙예탁기관의 등장이 탈중앙화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 이라는 단어 때문에 국가가 지정한 예탁기관이 사람들의 월렛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실 수도 있다. 그러나 예탁기관의 등장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훼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예탁기관은 그저 거래소 및 개인들이 서비스를 통해 만든 지갑의 주소와 데이터, 거래내역을 관리할 뿐이다. 미국 증권예탁결제원 DTCC는 이미 2016년 1월 BTC 관련 보고서를 통해 예탁기관이 블록체인을 도입하지 않으면 향후 블록체인이 이끄는 거래 플랫폼 혁명에 밀려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 지적한 바 있고, 한국의 KSD 역시 이미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대한 기술검증을 지난 2017년 8월 마친 바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역시 이미 2016년 DLT 관련 보고서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이 예탁결제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분산원장기술 관련 리포트 다운로드 링크
https://www.federalreserve.gov/econresdata/feds/2016/files/2016095pap.pdf
이러한 방식은 향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블록체인 토큰이 생성될 경우 이의 거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만약에 먼 미래에 BTC를 선두로 하는 블록체인 토큰들의 교환 범위가 점차 넓어져서, 예탁결제의 분리 및 법정화폐로의 교환을 차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경우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법정화폐와의 교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장지배력이 강한 블록체인 토큰이 등장한다는 것은 곧 법정화폐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거의 모든 경제가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 하에서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오히려 정부는 거래의 추적 및 단속이 더욱 쉬워진다. 블록체인에서 발생하는 거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실 경제에 잘 적응을 하지 못 하는 경우, 우리가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는 기술이 아무런 의미 또는 시장성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 기술이 현실 경제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기에는 무엇인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제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을 탐색하고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대가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