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와 같은 인터넷 유머가 있다.
얼마 전 결혼 30년차인 아줌마를 만났는데 남편비유가 꽤 그럴싸해요.
신혼 때 남편은 태양이었대요. 늘 자신을 따뜻하게, 환하게 해줬대요.
또한 태양을 따라 지구가 돌듯 남편을 중심으로 살았대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남편은 자신의 태양이라 합니다.결혼한 지 30년차인데 아직도 태양이라고니!!"우와..진짜예요? 대단하십니다."
그랬더니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면서 대답합니다.
"네...차마 눈 뜨고는 볼수 없어요. 짜증나서 화딱지나서!"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가톨릭 사제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바르미아대교구 사제로 재무를 담당하는 교구 운영 위원이었다. 또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523년 교구장이 사망하자 임시 교구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천문학을 연구했다. 그 결과 1542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해 태양을 중심으로 다른 천체들이 공전과 자전을 하고, 심지어 지구를 비롯한 천체들이 둥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구는 평평한 판과 같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당시로선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권에서는 회전(Revolution)이 혁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판 당시 여러 추기경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연구결과를 지지했고, 교황 비서가 그의 이론을 교황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지지하며 교회와 대립하는 학자들이 많아지자 교황청은 1616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의 일부를 수정해야만 출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 분야에서 활약한 많은 성직자 중 한 명이었다. 부활대축일을 결정하는 역법(曆法)의 기초가 되는 천문학은 늘 교회의 관심사였다.
크리스토프 샤이너 신부(1575~1650)는 태양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첫 천문학자였고, 베네딕트 세스티니 신부(1816~1890)는 처음으로 별의 빛깔을 종합적으로 연구했다. 천문학 분야에서 예수회 신부들의 공헌이 많았기에 달 분화구 중 30여 개에 예수회 신부들의 이름이 붙었다.
18세기에는 로마대학교에 천문대가 설치됐다. 루시퍼란 이름의 바티칸 천문대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저명한 천문학자와 함께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
출처:카톨릭 뉴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우리는 과학과 신학이 정반대이며 대립했다고 생각하지만 갈릴레오도 우르바노 8세의 교황의 친구라서 혜택을 받았고 또 케플러도 예수회 수도사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존경하는 굴딘 수도사에게라는 편지를 보내 사상적 동지임을 인식했다.
필자 생각에는 구교에서 예수회등이 신교의 도전이 거세지자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과학이란는 이름으로 피봇을 변경하는 지축을 완전히 변환하는 스탠스를 취해서라고 생각한다.
빅뱅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조르주 앙리 르메트르 신부(Abbe Georges Henri Lemaitre, 1894~1966)도 신학과 과학이 대립되지 않는다는 자세로 아이슈타인과도 논쟁을 했따.
사실 현대물리학 양자역학에 따르면 태양이 돌건 지구가 돌건 보는 사람의 방향이나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의 경우도 사실 두가지 동시에 존재하고 입장에 따라 두가지로 보는 것이 다 타당하다.
아무튼 위 유머에서 남편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는데 튼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www.imagediet.co.kr 강남역 4번출구 02-3482-0075 자향미한의원에서는 배나 가슴, 종아리, 허벅지의 튼살을 튼살침인 ST침으로 치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