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국립 5.18 민주묘지 홈페이지
광주에는 두 차례 가본 기억이 있다. 광주에 처음 가 본 것은 20대 후반쯤이었는데 나는 그 날 광주로 향하는 길에서 조금 기대를 하였다. 책에서, 뉴스에서, 신문에서 광주는 그만큼 특별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광주역에 내려서 광주를 처음 보고 광주의 거리를 처음 걷고 느낀 것은 광주는 낡은 도시라는 점이었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리고, 나와서 차를 기다리면서도 든 생각은 광주는 지저분한 도시라는 점이었다. 광주를 안내해주신 분이 모는 차를 타고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주택가에 있는 지인의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무등산 언저리의 언덕에 가볍게 오르며 산책을 하고 든 느낌은 광주는 평범한 동네라는 느낌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담양을 지나 순천으로 향했는데 차를 모시던 분이 중간에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 들려 차를 잠시 세우고 추모탑을 가리키며 그 곳이 민주묘지라고 알려주셨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휑하고 넓은 도로의 한 쪽에 넓은 부지가 보였다. 잔디와 나무들 덕에 푸르른 땅 위에 거대한 추모탑이 눈에 들어왔다. 인적 드문 그곳에는 적막감이 두텁케 하늘과 땅을 채우고 있었고 그 공간을 보고 있는 나도 온갖 뉴스와 책에서 읽고 들었던 광주의 이미지와 높은 추모탑, 그리고 그들의 참혹했던 죽음을 연결시키며 어느 새 숙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잠시 그곳에 서서 한 두마디 나눈 우리 일행은 떡갈비를 먹기 위해 담양으로 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여 유족들을 위로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유족들의 한 맺힌 마음을 누군가 달래주고 그 응어리 진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다면 다행이고 좋은 일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온갖 잡음들로 시끄러웠던 5.18 기념식이 정권이 바뀌자 순조롭게 치뤄졌고 그에 따라 많은 기사들 또한 쏟아졌으며 ‘민주화의 성지’라는 관용구가 자주 눈에 들어왔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말이 성립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어떤 땅이 다른 땅과는 분리되어 존재하는 성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 둘째, 민주주주의는 성스러운 것이라는 점.
첫째, 어떤 땅은 성스럽지 못한, 평범한 다른 땅과는 다르게 성스러운 곳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런 개념은 배타적 성질을 가진 종교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나는 분명히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모든 성스러운 공간, 성스러운 개념을 파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신성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그와 대립되거나 그에 속하지 않는 개념이나 인물, 집단을 배척하거나 차별,억압하는 기준으로 작용해 온 것이 인간 역사이다.
둘째, 민주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 등 모든 주의는 인류를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뿐이지 그 자체가 성스러움을 띄는 종교적 감정의 대상물이 될 수는 없다. 수단을 신봉하는 순간이 또다른억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수단은 상황에 맞추어 수정 가능하며, 결국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할 것은 인간이지 주의가 아니다.
광주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살해당하고 매맞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에 맞서 대항한 숭고한 정신들이 있었음은 물론 우리 속에 항상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만 기억하는 한 광주는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무덤으로만 남을 것이다. 내가 가 본 광주는 이웃 도시 화순의 수천년 역사의 기록인 적벽암도, 순천의 생명이 들끓고 있는 습지도, 담양의 바람소리 시원한 대나무숲도 없는, 개발되려다 만, 그대로 낡아버린 그저 그런 도시였고 역사 속 공간이었다. 광주에도 광주5미가 있고 떡갈비맛집이 있지만 떡갈비라 하면 담양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사람들은 광주를 5.18이라는 코드 아래에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나의 소양 부족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어디 달나라에서살다 온 것이 아닌 이상 수도권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 속에서 광주가 하나의 단일화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광주가 그 앞에만 가면 고개 숙이고 숙연한 자세를 가져야하는 성스러운 땅, 역사 속의 땅이 아니라 우리 옆에 살아 있는, 그래서 그 땅 위에서 새 기운이 일어나고 웃음소리가 울려펴지는 그런 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