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does someone become a critic? Because he cannot create."
팀 버튼의 영화 ‘빅 아이즈’에 나오는 대사이다. ‘비평가를 위한 동상은 세워 진 적이 없다’ 라는 말도 떠돌아 다닌다. 비평가란 어떤 존재일까. 한때는 나도 비평가들이 왜 비평을 하는 지에 대해 궁금했었던 적이 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비평가들은 창작을 하고 싶지 않을까?’ 가 내 주된 의문이었다. 유려한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면 감독보다 더 잘 만들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그 의문에 대해 내 나름의 답을 찾았고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소설가가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소설을 택하듯, 화가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 삶을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림그리기를 택하듯 비평가도 비평이란 형식을 택한 것일 것이다. 비평가에게 왜 창작을 하지 않고 비평을 하냐고 묻는 것은 소설가에게 너는 왜 그림을 그리지 않냐고 묻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은 아니었을까.
빌헬름 엘리히의 ‘프란츠 카프카’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전체를 유기적으로 해석한 평론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난해한 작품들을 분석한 수많은 연구들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는 책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수수께끼 같다는 표현은 그의 작품들에 언제나 따라 붙는 수식어이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 특히 ‘심판’과 ‘성’을 읽으면서 마치 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고, 또는 프란츠 카프카가 꿈 속을 묘사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독특한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깨어나면 꿈 속의 분위기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고 장면들은 심오하며 마치 중요한 메세지를 내게 전달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럴 때 그 꿈을 종이 위에 글로 옮겨보려고 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하려고 해 봤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꿈의 내용을 현실 세계의 언어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꿈 속에서는 현실 세계의 법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꿈 속의 내용은 현실 세계의 눈으로 봤을 때 시간 순서대로 부드럽게 전개되는 듯 하면서도 중간 중간 왜곡 또는 변형, 삭제 등이 일어나서 언어로 전달하기가 매우 힘들다.
바로 그 꿈을 대하는 느낌이 내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의 느낌이었다. 혼란스럽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건 그의 작품이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직관 또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빌헬름 엠리히의 책을 만났고 이 책으로 인해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것을 반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빌헬름 엠리히의 책을 읽으며 비평가에 대한 나의 인식이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한국 문학계의 원로인 김윤식 교수가 인터뷰에서 ‘비평가들은 창작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비평에 임해야 한다.”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체계적인 언어로 재표현해내는 비평가의 존재는 창작자들의 하나의 큰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