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는 황진이가 말릴새라 밀밭 한가운데로 비척비척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속주머니에서 총을 뽑았다.
황진이가 벌떡 일어서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자신에게도 거의 들리지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여기 도와줘요! 사람이...사람이..."
실편백나무 아래로 두 여인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다른 세상인것처럼 돌아보지 않았다.
고흐는 권총에 실탄이 든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총을 들어 관자놀이에 댔다가 떼었다.
"어떡하지? 난 내 귀도 자른 놈이야. 더 이상 머리를 손상하고 싶진 않아!
나중에 내 구멍난 얼굴을 보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도저히...어디를 쏴야 깨끗할까?"
고흐는 심장쪽으로 총구를 맞추더니 갈비뼈 틈새에 조준하고는 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탕-!
놀란 까마귀들이 일시에 밀밭 위로 날아올랐다.
진이가 허위허위 달려가서 쓰러진 그를 살피니 그의 가슴 심장근처에서 피가 흥건히 베어나와 옷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피의 발원지를 막았다.
황진이: 이럴 줄 내 몰랐던가....아냐! 알지만....아는데...
고흐는 그녀의 피묻은 손을 천천히 밀어냈다.
"젠장....정확하게 심장에 맞지 않았나봐. 난 마지막까지 실패자인건가?"
황진이는 그를 안았다가 얼굴을 만지고 부비면서 울부짖듯 물었다.
" 내가 어떻게 해줄까요? 날 당신의 마지막 자리에 불렀으면 원하는게 있을거 아녜요?
입..입맞춰 드려요?"
고흐: 줄게....있어!
그가 내민 조그마한 보석함을 보며 그녀는 실성한듯 웃었다.
"나한테 지금 프로포즈하는건 아니겠죠?"
"미안...그런게 아니어서 정말..."
바람이 사이프러스나무쪽을 맹렬히 흔들고는 불어와서 밀이삭을 일제히 쓸어넘겼다.
황진이는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듯한 얼굴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그녀에게선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성영화처럼...
"그런게 아니어서...그런게 아니어서..."
황진이는 그의 마지막 말을 되뇌이면서 몸서리를 쳤다.
쥔장: 진이 너 이렇게 자릴 오래 비우면 어떡하잔거니?
황진이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고-그녀가 있는 곳은 이야기찻집 4번 테이블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들어보았다. 손에 묻었던 핏기운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밀밭도 고흐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자리엔 몇오라기 마른 밀이삭이 있을 뿐.
황진이: 이거 꿈 아니잖아요! 쥔장...어디 갔어요? 빈센트...
쥔장: 정신차려 이것아! 외출은 자동시한부로 되어 있어! 그리고 꿈이냐고?
잘 들어! 지금도 꿈이야!
쥔장은 살짝 장난스럽게 진이의 뺨을 때렸다. 황진이는 쥔장을 한동안 보더니 복받치는 울음을 터뜨리며 와락 안겼고-그녀의 허벅지에 있던 무언가가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보석함!
쥔장은 그것을 조심스레 들어 열어보더니 황진이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