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현 종기 절개와 절개 수술 흉터침치료
백광현 [白光炫]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의관(醫官).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숙미(叔微). 혼자의 힘으로 의술을 익혀 침술의 권위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말[馬]의 병을 치료하다가 사람의 종기를 침으로 완치시켜 명성을 얻었다. 현종 때 치종(治腫) 교수로 내의원 의관을 겸하였다.
또, 현종의 항종(項腫)과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발제종창(髮際腫瘡), 숙종의 후종(喉腫)과 제종(臍腫)을 침으로 치료하였다. 1684년(숙종 10) 강령현감(康翎縣監), 1691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듬해 숭록대부(崇祿大夫)에까지 이르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종은 10년(1684) 5월2일 정사에서 그를 특별히 강령현감(종6품)에 임명했다가 포천현감으로 바꾸었는데,“의관의 수령 임명이 여러 번 중비(中批)에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백광현이 미천한 출신이고 또 글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별안간 그를 이 벼슬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대론(臺論)이 거듭 일어났으나 긑내 윤허하지 않았다.”이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현종이 죽고 숙종이 즉위했다. 백광현은 숙종의 종기를 치료하여 강령현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사헌부와 사간원이 일제히 비난했다. 숙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포천현감에 임명했다.
“임금이 명하여 어의 백광현을 영돈령부사 윤지완이 있는 곳에 보냈다. 백광현은 종기를 잘 치료하여 많은 기효가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라 일컬었다. 이 때에 이르러, 윤지완이 다리병이 있었으므로 특별히 백광현을 명하여 가보게 한 것이다.”
숙종실록의 기록이다.
“종기를 절개해 치료하는 방법은 白太醫백태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정내교는 자신의 문집 완암집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백광현은 종기를 절개하여 치료하는 외과적 수술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결렬의 법(상처를 찢어 치료하는 법)이 백광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을 남긴 장지연(張志淵)도 이와 같이 말했다. 여러 기록을 살피면 백광현은 우리나라 최초의 외과적인 수술을 한 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조선의 의사다, book lab, 이수광 지음, 페이지 124-125
외과수술은 서양에서만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단지 일제 시대 한의학의 정책적 억압으로 계승되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튼 외과 수술 절개 이후에는 흉터가 남을수 있다. 02-3482-9975 자향미한의원에서는 흉터침, 침, 한약 재생약침으로 진피를 자극재생하여 치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