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가는 미녀 초요경과 자향미한의원 허리 튼살치료
초요경(楚腰輕)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 기생.
가무(歌舞)를 매우 능하였으며 옥부향(玉膚香)‧자동선(紫洞仙)‧양대(陽臺)와 더불어 궁내(宮內)의 잔치에 자주 참석하여 왕이 이들을 ‘네 기녀[四妓]’라고 불렀다. 평원대군(平原大君) 이임(李琳)‧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과 사통한 일이 발각되어 이후에 기생이 궁내 잔치에 참석할 때는 얼굴에 가면(假面)을 쓴 것처럼 분을 두껍게 바르게 되었다. 1457년(세조 3)에 정처(正妻)보다 자신을 더 아꼈던 예장도감판관(禮葬都監判官) 신자형(申自衡)을 시켜 가비(家婢) 두 명을 때려 죽이도록 하였다. 1466년(세조 12)에는 옥부향‧자동선‧양대와 함께 천민(賤民)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그녀의 첫 번째 왕자는 바로 세종대왕의 정처인 소헌왕후의 일곱 번째 왕자인 평원대군(平原大君) ‘이임’이었다. 이임은 세종과 조정대신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고 한다. 작문에 능하고, 명필인데다 성격까지 좋아 늘그막의 세종이 특별히 아꼈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초요갱을 어여삐 여겨 직접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글만 가르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임과 초요갱이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이로써 기생으로서 초요갱의 값어치는 높아진다. 이임은 그녀에게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고, 나라에서 새로 제정한 악무(樂舞)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이것은 후에 굴곡진 초요갱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임은 열아홉이란 짧은 인생을 살고 요절하고 만다. 얼굴만 예쁜 기생이 아니라 지성과 재예(才藝)를 갖춘 요염한 여인이 된 초요갱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하고 그가 떠난 것이다.
이임을 만나면서 배웠던 악무 덕분에 궐 안의 행사에 춤을 추러 드나들던 초요갱에게 두 번째 왕자가 다가간다. 그는 평원대군보다 한 살 위였던 화의군(和義君) 이영이었다. 이임보다 형이지만 그는 세종의 후궁인 영빈 강씨의 아들이었다. 이복동생의 여자를 탐한 그는 끈질긴 구애로 초요갱을 품에 안는다. 결국 형제가 한 여자를 품에 안은 형세가 되었고, 당사자들은 이것을 숨겼다. 하지만 이 감춰진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실록에 초요갱이 처음 등장하게 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단종을 보위하던 충신들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스스로 영의정에 오른 수양대군은 반대파를 숙청하기에 이른다. 그는 금성대군의 집에서 여럿이 모여 경연을 즐긴다며, 이를 역모의 자리로 몰았다. 하지만 단종은 드러난 역모의 근거가 없다며 사건을 일단락 지으려 했다. 이에 수양대군은 그 경연자리에 있던 화의군과 초요갱의 간통을 구실삼아 그 죄를 물었다. 결국, 화의군은 변방으로 쫓겨났지만, 초요갱은 세종조 대에 악무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유배를 면하게 된다. 화의군이 죽고 나서도 궐 안을 드나들며 악무를 선보일 수 있었던 초요갱에게 세 번째 왕자가 다가온다.
그는 세종대왕의 두 번째 서왕자인 계양군(桂陽君) 이증이었다. 게다가 이증은 수양대군의 즉위를 도운 터라, 탄탄한 권력까지 갖고 있었다. 이복형제이긴 하지만, 화의군이 초요갱과 간통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간 것을 똑똑히 본 이증이 또다시 그녀를 품에 안기 위해 구애를 했다는 것은 그녀의 용모와 매력이 정말 출중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하지만 계양군의 품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초요갱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그녀를 품에 안으면 화를 당하는 주문이라도 걸린 듯, 계양군 역시 이른 나이로 요절한 것이다.
이후, 초요갱에게 다가오는 왕자는 없었다. 2년 동안, 순탄한 시간을 보낸 그녀에게 이번엔 또 다른 권력가가 다가왔다. 아버지는 세종 때 좌의정을 지냈고, 본인은 세조 추대에 앞장선 신자형(申自衡)이었다. 그는 초요갱을 너무 사랑하여 본처를 내치고 그녀에게 안방을 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불행의 예고였다. 안방을 차지한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여종들을 발견한 신자형이 그들을 때려죽인 것이다. 이 사건은 세조의 귀에 닿았고 신자형은 엄하게 추국 당했다고 한다. 이것으로 일단락되면 좋았을 것을, 신자형의 칠촌조카인 안계담(安季聃)이 초요갱을 간음하기 위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당시 그녀는 출타 중이었기 때문에 그 소란에 얽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조는 자신의 동생 셋과 공신까지 기생에 홀린 것에 큰 반감을 갖게 되었다. 이후, 그는 궁중행사에 기녀를 부르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세 명의 왕자와 권력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초요갱의 마지막은 평양기생의 모습이었다. 그 곳에서도 국상(國喪) 중에 평안도 도사와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신고 대상이 되었다.
ljuro.com 출처
초요경[초요갱]은 아마 이름이 초영왕이 허리 가는 미녀를 좋아했는데 허리가 날씬한 미녀임이 이름에 드러난다.
초영왕(楚靈王) 웅건(熊虔), 웅위(熊圍)는 초나라의 27대 왕으로 원래 이름은 위였으나, 왕이 된 뒤 건으로 고쳤다. 초공왕의 차남. 자신의 조카이자 전대 초왕인 겹오인 웅균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니 그 해는 기원전 540년이었다. 그는 가는 허리의 여자[細腰]가 취향이었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해 굶어 죽는 일이 적지 않았다. 장화궁이 낙성되자 초영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만을 뽑아서 거처하게 했으므로 장화궁을 일명 細腰宮이라고 했다고 한다. 묵자(墨子)를 보면 초나라의 초영왕(楚靈王)이 허리가 가는 신하들을 좋아하자, 조정 관리들이 허리를 가늘게 만들기 위해 끼니를 굶고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다녔다. 일 년이 흐르자 관리들의 얼굴색이 누렇게 변하고 피골이 상접하여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초나라처럼 허리를 날씬하게 하는 다이어트가 인기이다. 그런데 복부지방을 없애면 대사증후군도 줄어들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등에도 도움이 되어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도 그 흔적이 남는데 팽창선조라고 불리는 튼살이 허리, 옆구리, 배등에 남는다.
허리가 가늘고 엉덩이[골반]이 넓은 여성이 사랑을 받는데 다이어트를 해도 뱃살 피하지방이 늘어나서 생긴 튼살은 제거할수 없다. 또한 비만이 아니라 피치못하게 임신중에 배에 튼살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강남역 8번출구 www.imagediet.co.kr 자향미 한의원에서는 ST침으로 배와 허리 옆구리 튼살치료가 가능하게 만들어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