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은 심한 고문 끝에 죽고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아들 삼형제도 처형을 당했다. 그의 부인인 전씨는 마침 임신 중이었다. 반란과 역모죄를 범한 부모 사이에서 생긴 뱃속의 아이라도 태어나면 연좌의 형을 받게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아들일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죄를 물어 죽임을 당했다. 전전긍긍하던 전시는 마침 계집종이 딸을 낳게 되자 자신의 아들과 바꿔치기를 했다.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후손은 조의 신분으로 숨어 살다가 훗날 선조의 도움으로 복원되고 벼슬까지 하사받는다. 하지만 박계창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면 품에 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조선왕들의 생로병사, BF북스, 강영민 지음, 페이지 151
조선 선조 때 사람 박계창은 경상도 달성 묘골에 살았다. 고조부 기일에 박계창이 꿈을 꾸었다. 꿈에 마당에 인기척이 들리기에 나가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다섯이 자기 할아버지와 함께 사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깨어나 생각하니, 함께 사당을 찾은 혼(魂)들은 고조부 박팽년과 함께 죽은 동료들이었다. 이름은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였다. 훗날 사육신이라 불리게 된 사내들이다.
선조 때 경상도에서 기적 같은 소식이 올라왔다. 박팽년의 손자가 있다는 것이다.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에 따르면 임신 중이던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가 친정이 있는 경상도 달성 관비로 내려가 아들을 낳았다. 마침 여종 또한 아이를 낳으니 딸이었다. 여종과 이씨는 딸과 아들을 바꿔 비(婢)라 이름하고 비밀리에 키웠다. 박비는 죽음을 피해 지금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에 숨어 살았다. 그러다 성종 때 이모부 이극균이 경상관찰사로 부임해 이 사실을 알고 자수시켰다. 이덕무에 따르면 "성종은 크게 기뻐하며 일산(一珊·'구슬'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박종인님의 땅의 역사 중에서
충신 사육신의 후손이 살아 남아 후대를 이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필자 예전 친구도 계유정난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종서 후손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사육신은 후손이 끊겨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조선은 세조가 멸망시켰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유교 도덕적으로 이미 끝났다고 본다. 그 이후에 조선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가 성종을 정점으로하여 선조, 인조 이후로 다시 회복을 하지 못했다. 실학이나 영조, 정조가 조선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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