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일 오후 11시 20분 그것이 알고 싶다 1113회 ‘인간 재생 공장’의 비극 -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편을 시청했다.
1961년, 충남 서산의 어느 작은 마을.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조차 쉬쉬하는 괴담이 떠돌고 있었다. 어스름한 밤이면 시신을 들것에 실어 나르는 발자국 소리와 철조망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마을을 공포에 떨게 했다.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끌려들어가 들것에 실려 나와야 했던 그곳. 1961년 대한민국의 치외법권 지역, 그곳은 이름조차 낯선 ‘대한청소년개척단’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거리의 부랑아 등에게 갱생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들을 사회로부터 강제로 치우는 사회명랑화 사업을 시작한다. 공권력은 거리를 배회한다는 이유로, 퇴근길이 늦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단지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을 속칭 ‘후리가리’(경찰의 일제 단속 등 실적을 위해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 오는 속어)했다. 영문도 없이 끌려온 이들은 수용소와 다를 바 없었던 서산의 폐염전에 갇혀 밤낮으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허기와 고된 노역, 폭력까지 이들은 하루하루 비참함을 견뎌야만 했는데... ‘창살 없는 감옥’ 강제 노역 수용소와 같았음에도, “짐승만도 못했던 삶을 견뎌야 했던” 개척단원들은 50년의 세월 동안 국가에 속고 또 속았다고 말한다. 그들이 겪은 고난과 땅에 대한 진실은 왜 묻혀왔던 것일까?
공장에 보내주면 2배 월급준다고 해놓고 인간재생공장이었다.
- 피 맺힌 땅에도 봄은 오는가
당시 군사정권은 부랑아와 깡패, 윤락여성들에 대해 지난 과오를 잊고 국가재건사업에 참여시키는 소위 ‘인간재생공장’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또한 125쌍의 합동결혼식도 홍보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합동결혼식은 정부에 의한 강제결혼이었고, 모든 개척단원들이 부랑아와 윤락 여성은 아니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속아서 혹은 강제로 잡혀 왔다. 군사 정권의 정책 홍보와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결혼을 강요당했던 20대의 젊은 여성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한 맺힌 한숨만 지을 뿐이다.
왜 이들은 50년 세월 동안 비인간적인 폭력과 노역을 감내해야 했을까? 개척단원들은 그 이유는 이곳에서 조금만 견디면 개간한 땅을 나눠 준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나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내 땅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비참한 생활을 인내할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척단원들이 맨손으로 일군 개척지에서 막 싹이 트기 시작할 때, 정부는 개척단원들에게서 그 땅을 다시 가져갔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매번 재판에서 국유지라서 줄 수 없다는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의 약속을 믿고 청춘을 받쳐 땅을 일궜지만 또다시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다. 개척단원들은 정부의 홍보물로 만들어진 자신들이 또다시 정부에 의해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군사정권이 만들고 사회가 묵인했던 대한청소년개척단, 이제라도 50년 묵은 하소연에 귀 기울일 수는 없을까?
당시 고된 노동과 이어지는 폭력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A씨는 친형이 서산개척단으로부터 탈출하다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모았다. 또 감시조가 막사를 빙 둘러싸고 지키고 있어 탈출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했다.
당시 피해자 B씨는 "(서산개척단의) 임시 막사에 배치가 됐는데 몽둥이에 어머니 사랑, 정신, 보신탕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세명이 도망갔다고 소문이 났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들의 시신이) 저수지에 떴다"며 "시신이 멀리 떠내려가지 못하고 물이 많아 왔다갔다 하며 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주민들이 알려줘 얼른 시신을 가져다 묻었다"고 밝혔다.
피해자 C씨도 "인간대접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간으로서 존엄성이라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며 "군대에서도 몽둥이 같은 걸로 맞고 했지만 여기보다 살기 편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친구가 도망쳤는데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또 한 피해자는 마산으로 기차타러 가다가 9세에 먹을 것을 준다는 꼬임에 빠져 오게 되었는데 결국 누나가 동생을 찾으러 왔지만 만남을 거부당하고 누나는 찾지 못한 죄책감에 정신병원에 입원해 사망했다고 한다.
한 할머니는 공장에서 일하다 월급 2배 준다는 꾀임에 빠져 오게 되었고 또 자신의 결혼 상대자가 찾으러 왔는데 돌려보내졌다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또 한 사람은 네온사인 만드는 기술자였는데 야근하다가 끌려왔고 또 야근 이후 통행금지에 걸려 강제로 끌려오는등 원래 부랑자가 아닌 멀쩡한 사람이 많았다.
왜 이들은 50년 세월 동안 비인간적인 폭력과 노역을 감내해야 했을까? 개척단원들은 그 이유를 이곳에서 조금만 견디면 개간한 땅을 나눠 준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화운동을 해서 민정식 단장을 몰아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끊기고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또한 고생은 지속되었다.
절반정도 단원이 남은 이유는 누구나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내 땅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비참한 생활을 인내할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개척단원들이 맨손으로 일군 개척지에서 막 싹이 트기 시작할 때, 정부는 개척단원들에게서 그 땅은 빌려준것이니 구매하라고 다시 가져갔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매번 재판에서 국유지라서 줄 수 없다는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의 약속을 믿고 청춘을 바쳐 땅을 일궜지만 또다시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다.
개척단원들은 정부의 홍보물로 만들어진 자신들이 또다시 정부에 의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촬영했던 영화 '서산개척단' 이조훈 감독은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박근혜 정부 때였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 때 잘못된 것을 취재해 방송하는게 힘들었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했다"고 말했다.
어떤 농부가 나와서 말하는데 당신은 1조원을 줘도 땅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피땀이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이라도 정부는 땅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대한청소년 개척단의 피해와 희생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
필자가 알기로도 소록도도 비슷한 한센병 환자를 동원해 땅을 개척한 케이스가 존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두환 시절 삼청교육대는 들어봤어도 정부가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해 보상을 안해주는 것은 황당하다.
일제 징용에 끌려가 인건비를 못받은 분들이 일본 회사를 상대로 아직도 소송중인데 정부는 그들의 청춘과 노동력에 대해 무상으로 제공받아 국유지만 늘렸다.
그런데 이런일은 아직도 존재하는데 징병제도로 최저임금을 못받고 2년간 무상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그 이후에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등 40세까지 노예역할을 못벗어나고 있다. 징병제도 자체가 무조건 최저임금은 줘야 하는 노동법과 배치되는데도 아직도 운용을 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거꾸로 하면 예비군훈련때 군기가 개판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사이비 종교단체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형제복지원등 복지시설을 빙자한 단체가 착취하는 것은 봐도 국가란 이름으로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한 것이 참 괘씸하다. 그것도 50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겨우 말할 수 있는 사실 언론통제에 대해서도 참으로 할 말이 없다.
필자는 따라서 아나키즘을 주장한다. 우리는 이런 무정부주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어야 하며 입금 계좌를 틀어막고 은행을 압박하는 119조를 위반해 초헌법적인 정부를 고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암호화폐를 더 이용해야 한다.
4개 암호화폐 거래소와 6개 은행에서만 계좌를 그것도 거래소당 한두개만 만들게 하는 정부를 압박하는 방법이 아래와 같다.
www.epeople.go.kr
일반 정부 민원 신문고
암호화폐 거래내역 불편 사항에 대해서 여러 가지 민원 제기
암호화폐 거래소 독과점과 시중 은행 6개만 이용할수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서 조사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해서 민원 제기
당사자도 아닌 법무부에 대한 민원 제기
www.bai.go.kr
감사원
감사원에 국무총리 이낙연, 최흥식 금융감독위원장, 법무부장관 박상기등 감사원 감사요청
www.open.go.kr
정보 공개장소
법무부, 금융감독원등 공무원 암호화폐 거래 내역 및 보유내역 정보 공개 청구
www.simpan.go.kr
행정 심판 위원회
정부에 의해서 암호화폐 피해당한 사실에 대해서 행정심판 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