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문방구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대개 수놈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면 암수 감별을 해서 보통 수놈은 바로 기계로 갈아 죽여 사료에 섞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거기서 수 병아리를 가져다가 학교 앞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판다. 요즘은 독한 염색약으로 병아리들을 빨주노초파남보로 염색을 하여 팔기도 한다. 상술이란 ... 돈을 좇는 자본주의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 끝까지 악한 것이 많다. 하긴 그렇게라도 태어나자마자 잔인하게 죽을 운명의 병아리들의 목숨이 조금이라도 더 연장되는 것이 나은지... 모르겠다.
서울 사는 지인의 아이들이 그 수평아리 두 마리를 사다 키우다가 어느 정도 자라니까 더 키울 수 없어서 우리 집에다 강제로 떠 넘기고 갔다. 그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를 부모님이 팔았을 때 받은 상처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래서 그 닭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채식인인 것을 알자마자 바로 그 닭 두 마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는 병아리들을 위해 닭장을 짓고 짝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주 순진하게 두 마리의 암탉을 더 사다 넷이서 함께 하게 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순수한 생각이었는지 여러분은 알 것이다. 한 마리의 수탉은 보통 15마리 정도의 암닭을 거느리는데 우리는 사람처럼 일부일처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느덧 중닭으로 커갈 무렵 그 지인은 다시 아기 오리를 한 마리 가져왔다. 자기 아이들이 실험실에서 부화시킨 오리라고 했고 이름을 순희라고 지었다고 했다. 돌봐야 할 가족이 하나 둘 늘어나자 나는 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반려 묘 두 마리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커다란 고무대야에 깨끗한 물을 받아 놓고 오리를 넣어주었다. 오리가 물속으로 들어가서 대야를 따라 한 바퀴 쓕! 하고 헤엄치고 돌아오자 녀석에게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때부터 녀석은 욕실의 욕조와 안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집에서 키우던 반려묘 루리라는 거의 십 년을 같이 산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우리와 아주 특별한 교감과 신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얼굴 표정을 보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구별해서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루리는 다른 어린 고양이는 우리 뜻에 따라 잘 받아들여 다정하게 보살펴 주었지만 대체 오리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노란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 오리가 방안을 의젓하게 걸어 다니면 루리는 어쩔 수 없어 했다. 그러면서 우리 때문에 해칠수는 없었기에 나에게 와서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며 항의하며 기분 나빠했다. 구석에 가서 가만히 노려보다가 에잇~ 하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루리는 워낙 우리가 믿는 아이라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약 1주일간 청소년 캠프를 진행하고 나서였다. 아이들이 오리, 고양이, 닭들과 함께 놀고 어울리다가 마지막 날 한 아이가 순희를 데리고 왔다. 발이 뒤로 뒤집혀 있었다.
"모르겠어요. 언제 이렇게 되었는지.." 아이는 울려고 했다. 긴급하게 아이 먼저 안심시켰다.
"괜찮아. 놀다 보면 이럴 수 있어. 병원 데려갈 거야 그러면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조금 거친 아이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아이를 진정시켜 돌려보내고 병원을 데려가니 다행히 뼈가 다친 것은 아니고 인대가 다쳤으니까 다리를 바로 해서 잘 돌보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캠프가 끝나고 나는 순희를 아예 내 품에서 안고 자며 돌보기 시작했다. 다친 다리를 조금씩 살살 문질러 마사지를 해 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회복이 되어 곧 씩씩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이 걷게 되면서 나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녀석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했는지 내 가슴에 올라와서 자려고 했다. 그러다가 변이 마려우면 엉덩이를 벽 쪽으로 향하고는 찍! 하고 변을 벽 쪽을 향해 발사했다. 내 몸에 안 싸서 다행이긴 하지만 오리와 한방에 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순희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와 떨어져서 결코 욕실에 갇혀 혼자 지내지 않으려고 했다.
루리가 병이 났다. 열 살. 수명이 다 된 아이라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핑계 병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를 잃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최대한 그 아이를 돌보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루리가 스트레스받아해서 순희는 할 수 없이 욕실에서 홀로 지내게 했다.
내가 욕실에 들어가면 순희는 엄청 반가워했다. 그리고 다가와서 안아달라고 했다. 그러면 욕실에서 순희를 안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일어나 가려고 하면 또 꽥꽥 거리며 안아달라고 했다. 이런 일이 무한정 시간제한도 없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점점 욕실에 들어갔다가 순희를 안아주지 않고 그냥 도망 나와야 했다.
봄이 되고 루리가 떠났다. 우리는 순희를 닭장에 넣어서 닭 들과 함께 지내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순희가 닭장에 들어가자마자 수탉 대장 알콩이가 순희 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서열 확인을 위한 짝짓기 행위를 했다. 순희는 그 작은 몸으로 최대한 힘껏 버티며 얌전히 수탉 대장에게 복종했다. 그리고 그 무리에 받아들여졌다.
닭들은 모두 2층 횟대 위에서 자고 순희는 아래 1층 땅위에서 잤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닭장 문을 열어주면 닭들은 집 주변을 돌며 풀을 뜯어먹고 벌레를 잡아먹었다. 순희는 할 수 있는 한 아주 열심히 닭들을 따라다니며 무리에 끼려고 했다. 정말 외로웠나 보다. 이때 순희 얼굴을 보면 "따라가고 말 거야!" 하는 비장한 결심이 서려있었다. 내가 순희를 만지려 하면 못 만지게 했다. 그리고 닭들의 맨 뒤에 서서 닭들을 열심히 뒤쫓았다. 닭들을 떠나 혼자서는 연못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녀석 스스로 이제 나를 떠나 닭들 무리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문제는 순희가 닭들을 따라다니다가 돌계단 식으로 되어 있는 곳을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닭들은 오리에 비하면 컴퍼스가 긴 편이었다. 녀석들은 날개도 있어서 웬만한 계단을 아주 쉽게 올라 다녔다. 그런데 순희는 그게 안되었다. 순희는 노상 그런 장애물에 막혔다. 그러면 뒤에 쳐진 순희 혼자 꽥꽥꽥하고 큰 소리로 닭들을 불렀다. 그러면 닭들은 다시 되돌아와서 순희가 걸을 수 있는 평탄한 쪽으로 행로를 바꿔서 함께 갔다.
그래도 집 주변과 집 앞에 있는 연못까지 집은 거의 3단으로 되어 있었고 닭들의 행동반경도 넓었기 때문에 순희는 늘 곤경에 처했다. 어느 날 닭들이 일제히 울어댔는데 그게 완전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울음소리였다. 남편과 나는 놀라서 닭들이 우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산에서 짐승들이 내려와서 습격했나 싶었다. 달려가 보니
순희가 돌계단 아래 혼자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닭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행로를 변경할 수 없기에 일제히 울어서 우리를 불러낸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우리는 순희를 계단 위로 올려주었다. 순희는 다시 기가 펄펄 살아나서 닭들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한동안 이렇게 우리는 닭들에게 불려 나와서 순희의 서비스맨이 되어주어야 했다. 남편과 나는 녀석들이 우리를 불러 댈 때면 낄낄거리고 웃으면서도 한 번도 달려가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이 세상에 닭들에게 불려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을 거야 그렇지? "
어느 날 저녁 닭들이 집에 돌아와서 횟대에 올라가 잘 시간이 되었는데 또 요란하게 울어댔다. 우리가 나가자 검은 짐승 하나가 닭장 근처에서 산 쪽으로 살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순희 혼자서 닭장 입구에 서서 짐승과 마주하고 있었다. 닭장 문을 미쳐 닫기 전이었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날 뻔했던 것이다. 순희는 심장이 바깥에 나와 있다고 보일 정도로 용감했고 짐승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짐승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었다.
어느 날 서울을 갔다가 한 밤중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닭들과 순희를 걱정했다. 닭장 문이 한 밤중 까지그대로 열려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몇 번 닭장 문을 못 닫아 준 적이 있었지만 산 짐승들은 한두 번 닭들의 기세와 우리에게 쫓겨 간 후 거의 내려오지 않아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수탉 대장이 대단히 지혜로운 녀석이라 녀석은 정말 무리를 잘 보호하고 이끌었다. 저녁이 되면 닭장이나 근처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자곤 했다.
돌아와 보니 닭장 안에 순희가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고~ 아이를 잃었나 보다. 나는 심장이 덜렁덜렁 거리는 상태로 순희야~ 순희야~ 하고 마당에서 불러댔다. 남편이 손전등을 가지고 나와서 계단 아래 어디 순희가 못 올라오고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가 어디서 아주 작은 소리로 "괙괙~" 하고 순희가 자기 위치를 알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있었다. 구덩이가 좁고 깊어서 순희를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무릎을 꿇고서 오른팔을 구덩이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순희가 달락 말락 하는 지점에서 손바닥을 딱 폈다. 그랬더니 순희가 내 손으로 냉큼 올라서는 것이었다.
녀석~ 이렇게 용감하고 이렇게 똑똑하다니...
나는 손바닥에 올라선 순희를 그대로 받쳐서 엘리베이터처럼 순희를 상쾌하게 끌어올렸다. 순희는 다친데 없이 말짱했다.
순희가 더 커가면서 아주 우아한 귀부인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귀부인에게 아침저녁으로 깨끗한 목욕물을 대령해야 했다. 연못물은 더러워서 싫어했다. 아침이 되면 깃털 사이사이를 부리로 물을 물어다 씻고는 물에 들어가서 날갯짓을 하며 물을 튕겨 올리면 물방울이 순희 날개 끝에서 방울방울 부서져서 튀어 올랐는데 내리비치는 아침 햇살 속에서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순희 목욕물 대령 서비스도 아주 행복하게 해주곤 했다.
어느 날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정원으로 들어왔다. 밥을 가져다주었는데 녀석이 "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너네 속셈 다 알아!" 하는 눈초리였다. 그러면서도 여긴 예전에 내 영토였어. 건들지 마! 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런데 녀석이 우리 반려묘와 꼬맹이 고양이와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이었다. 꼬맹이 고양이가 녀석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앵앵 울며 스트레스받아 하기만 했다. 그래서 녀석을 다른 영역으로 쫒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이 녀석을 나가라고 쫒아 냈다. 그리고 다음다음 날이었다. 남편은 교육생이 있어서 개인 교습을 하고 있었고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 때 보다 유난히 공기가 착 가라앉아서 조용했다.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면 나는 종종 이렇게 이상하고 무섭도록 깊고 착 가라앉은 고요한 공기를 느끼곤 한다. 바깥에 나오니 땅바닥에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이런! 나는 무서운 일을 예감하며 핏방울을 따라갔다. 핏방울 끝에 날개 한쪽이 빨갛게 물든 순희가 닭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닭들은 여느 때처럼 평화롭게 풀을 뜯고 발로 땅을 파 헤지고 있었다.
닭들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순희의 날개를 물고 달아날 만한 짐승도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아마도 며칠 전 쫒아 내었던 그 동네 고양이로 추정되었다. 산짐승이면 닭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동물이 경계를 하지 못하도록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고양이들이다.
순희는 날개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마치 닭들 무리에 속해서 녀석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지상의 의미 인양 떨어지는 핏방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초연했다. 녀석을 데리고 동물 병원에 갔더니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동맥을 뚫었다고 했다. 동맥이 구멍이 빵 뚫려서 피가 퐁퐁 솟아 나오고 있었다. 몸에 붕대를 감으니 싫다고 답답하다고 난리가 났다. 그래도 지혈이 될 때까지는 견뎌야 했다. 하루가 지나자 순희는 스스로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다시 백조의 날갯짓보다 찬란한 목욕을 했다.
닭들과 순희는 모두 우리와 5년여를 함께 살다가 생을마감했다. 수닭 대장 알콩이는 여기 강원도 까지 데려와서 7년을 살았고 동네 개와 한판붙고 후유증으로 작년에 생을 마감했다.
ps.
순희가 닭들과 함께 지냈던 이야기는 나중에 "통디 이야기"이라는 어른과 아이를 위한 성장 동화로 씌여졌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 스토리의 모티브에 얹어서 어린 순희가 독립과 자유를 획득하며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삶의 여러 가지 변곡들을 넣었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담겨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문장들을 대사로 구성해 넣고 또 탐구할 수 있는 삶의 중요한 주제들과 문장들을 넣어 아이들의 정신을 단단하게 형성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종이 출판을 몇 군데 알아봤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그래서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동화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 엄마들을 위한 동화가 많습니다. 엄마들이 동화를 선택하기 때문이지요. 대부분 동화가 아이들을 이성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감정을 쥐어짜는 동화를 아직도 선호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을 이끌어 주도록 스토리를 짠 내 '통디 이야기'는 그냥 묻혔습니다.
지인이 그림도 그려주고 영작도 해줘서 아마존에 "통디의 모험"이란 제목으로 올렸는데, 헐리우드에서 아이들을 위한 영화로 만들겠다고연락 올것을 기대하며..ㅋㅋ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안 팔렸습니다. ㅋㅋ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본의 아니게 책 선전이 되었네요. 글 쓰다 보니 순희 이야기가 통디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네요. 벌써 기억속에서는 까마득히 잊혀져 있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