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흔히 SI라고 하는 기업 시스템 통합 부분에서 일하는 이 땅의 노동자였고, 구로, 판교, 역삼 등지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는 전산 노동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이상한 일이지만, 그 일이 즐겁고 자랑스러웠다.
엄청나게 고된 노동 속에서 태생적으로 게으른 나는, 틈이 나는 대로 코딩과 작업을 자동화하는 일에 잔꾀를 내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보통 자바 기반의 이클립스 플랫폼에서 MVC 방식으로 작업하는 거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멋진 써드파티 툴을 만들어서 순식간에 수십~수백개의 파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데, 나는 직접 코딩을 하지 않고, 컴퓨터가 코딩하는 일을 감독하는 일을 주로 수행했다.
혼자 쓰면서 능력을 검증한 툴을 사이트에서 맘이 맞는 개발자들에게 알려주면, 그들도 곧 그 툴의 수혜자가 되었고, 항상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개발자들이 되었다. 가끔은 여러가지 이유로 그 툴의 수혜를 거부하는 개발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곧 SI 좀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동화의 끝을 생각하다가 2016년 알파고 사태가 터졌는데, 대기업 작업을 하다가 지능성 솔루션들(STT, 간단한 챗봇, NLP 솔루션 등)을 보면서 그 능력에 회의적이던 나는 금새 마음을 고쳐먹고,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정녕 이 땅에서 SI 개발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구를 진행했지만, 인공지능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소위 '딥러닝deep learning'적인 방식에는 금방 한계점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주류를 차지하는 뉴럴 넷 기반의 기계 학습 방법은 거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시스템 자원을 동원해(거의 코인 채굴 수준의 리소스가 투입된다) 나름의 '깊은 방정식deep equation'을 찾는 것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우리의 뇌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인간은 거의 대부분 컴퓨터만도 못한 능력을 지닌다. 계산도, 암기도, 때로는 숙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의 능력은 컴퓨터의 경직된 사고와는 너무도 다르고, 때론 말도 안되게 직관적이어서 자동차, 사자, 치타, 기린, 코끼리, 데스크탑, 노트북, 스마트폰 등과 같이 특정한 분야에서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인공지능은 그런 인간의 능력을 닮아 있어야 한다. 지금의 딥러닝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년(2017년) 초, '기억과 참조memory and reference'능력을 기반으로 한 '니마시니mnemosyne'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게 되었고, 개발자들의 곁을 떠나 프리랜서로서 연구의 길을 걷게 되었다(말이 프리랜서지 사실상 백수).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연초엔 서울대와 인연이 되어, 그리고 연말즈음에 '대구경북과기원dgist'와 인연이 되어 연구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렇게 한창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마전 '비트코인' 사태가 터지고, 알쓸신잡으로 정치적 지식인으로 입지를 탄탄히 다져가던 유시민 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예의 그 '나 혼자 진리' 스타일의 썰을 풀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법무부에서는 거래소 폐쇄의 엄포를 놓고...나는 돈벌이나 투자에 거의 관심이 없던 전례를 끊고, 1월 13일 즈음, 없는 돈에 100만원을 털어 비트코인 50, 이더리움 50만원어치를 샀다. 사기 직전까지도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엔 일도 관심이 없었다(다만, 그 존재와 기술적 배경은 문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자마자 다음 주에 '피의 수요일'이 터졌고, 지난 주엔 800 선이 무너지는 '검은 금요일'도 맞았다. 하지만, 개의치는 않는다. 액수도 소액이지만, 암호화폐의 밝은 미래를 믿고 있고, 또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자본주의 시장은 누구나 알다시피, 이미 상위 1% 정도 되는 사람들의 정해진 게임이 된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자유시장'이나 '자본주의 법질서'의 어떤 논리로도 그들의 돈이 시장에 나오도록 강제할 수 없다. 몇 조씩이나 되는 유보금을 쌓아두고, 시장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커버린 그들(거의 허생급)인 지라,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다시 시장이 활기를 띠는 일은 거의 드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등장이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몰고 갔다. 기술적 혁신이 늘 그렇듯이,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발상과 그 발상의 실현이 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현의 주체는 역시 기존 질서의 그늘에서 숨죽였던 많은 '민초' 혹은 '개미'들이었다.
이 혁명의 미래가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학 혁명처럼 기득권의 탄압에 주저앉을 수도 있고, 혹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 농장Animal Farm'에서 보는 것처럼 혁명의 주체가 기존 거인들과 타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의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개인의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화폐혁명의 앞날도 불가측하므로, 우리는 결국 또 선택의 문제로 돌아 와야 한다: "같이 갈 것인가, 머물 것인가?"
인생이 늘 양면이 있지만, 나는 코인에 투자를 하고,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긴했지만, 그 덕에 암호화폐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그 덕에 '스팀steem'이라는 화폐와 이 화폐가 기반한 콘텐츠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글쓴이에게 직접 보상을 한다', 여기는 이런 꿈의 논리가 실현되고 있고, 이 발상이 주는 사회 변화에 대한 엄청난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진다. 이 시스템이 모범적으로 정착되었을 때, 음반, 영화, 웹툰, 소설, 언론 등 다양한 콘텐츠 시장의 판도 변화는 불을 보듯 한 일이다. 어찌 설레지 않으랴!
신나고 가슴뛰는 일을 하라고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오늘 죽어도 좋을 일을 하고 있는가?' 적어도 스팀에서 글 쓰는 일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뭘 한다는 것인가? 로켓이 출발할 땐, 앞이고, 뒤고, 일단 타라는 격언이 있다. 지금 암호화폐는 막 출발하는 로켓이다.
역사가 늘 그렇듯, 누구는 타고, 누구는 비웃을 것이다. 심지어 노아Noah가 타라고 방주 앞에서 손짓할 때도 사람들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나는 타고 있다. 아마도 먼 훗날, 그 모든 것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노라고 말 할 날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