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새벽 세시, 뒤틀리는 속을
부여잡고 어딘가로 난 터벅터벅 길을 걸어
차는 끊겼지 오래전에, 노래 들으며 가는 뚜벅이
신세가 택시값보단 훨씬
맘 편해, 저기 보이는 나 같은 동지들
비틀거리며 거리를 거닐어. 어지러운
불빛들, 영화나 드라마에선
낭만적일 진 몰라도 지금은 아냐
재미없던 술자리, '지겹다'하다가도
분위기 띄우자고 하던 원샷 파도타기
아무도 자기 얘긴 안해. 연예인 신변잡기
아님 옆 자리 앉은 여자들
외모밖엔 입에 오르지 않지
기나긴 정적 뒤, '넌 이제 뭐할 꺼냐?'는 말이
나오자마자 애꿎은 폰만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 하다 조용한 facebook을 켜
웃긴 동영상보면서 재밌는 척
그러다 괜히 말돌리면서 게임을 켜
내가 왜 이러냐고? 할 말 없으니까
말 꺼냈다가 괜히 귀찮을뿐이니까
그래, 난 음악하고 싶어. 그게 유일한 내 꿈.
나도 알아. 겉만 랩퍼고 실제로는 백수지, 뭐
랩은 잘하냐고? 노력해야지.
'인생 좆되기 전에 딴 길도 고려해야지'
알아. 너나 잘해,씨발아, 니가 뭔데 지적이냐
나도 내가 한심한 거 알아, 메모장 적힌 낙
서같고 예술 운운하면서 허세 부리는 태도.
그래봤자 남은건 자부심 없는 track들
그렇게 판을 깨. 계산 후에 술집 계단을 내려오며
난 후회를 해,
밤바람에 잠도 깨고, 실은 술도 깼어. 벌써.
차라리 취했다면 취했다는 애먼 변명
이라도 할텐데, 집으로 간다는
그 놈과 데면데면 인사.도망치듯
어색한 자리를 나와 이렇게 걸어.
귀에선 외국랩퍼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여.
그러면서 억지로 즐겨, 그냥 좋다 느껴
실은 모르겠고 지금 졸려
오늘밤도 고민하다 잠들겠지.
이런 날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애들
누구랑 이 밤을 끝낼까? 학교후배?
아니면 존나 예쁜 제일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 오늘은 후자가 끌리지. 더
뜨거운 이불 속에서 숨죽여서 비비적
대다가 보는 건 오른손에 묻은
끈적하고 역겨운 희멀건 정액뿐
이 곡의 가사는 아마 2014년 1월 전역 전후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마 부천에서 술자리를 가지고 신도림인 집까지 가야 하는데 차가 끊겨서 야간버스가 있는 중간지점까지 걸어가던 겨울이었다. 당시 조이 뱃애즈의 1999 믹스테입이 핫해서 그의 노래 몇 개를 듣던 중 mf doom의 이 비트에 랩을 얹은 트랙을 듣게 되었고 술취한 밤거리와 참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마 극초반부의 길거리 소리를 녹음한 인트로는 당시의 소리는 아니고 믹스테입과 이 트랙을 구상하며 나중에 따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아트워크에 실린 저 나무가 있는 우리 집 앞 길거리)
보면 알겠지만, 이 믹스테입은 초장부터 열등감과 찌질함의 정점에서 시작한다. 사실 얼마 전 리뷰 소개글을 쓰면서도 밝혔지만 당시 나의 현실이, 이 술자리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단지 내가 가진 그런 어두운 부분을 긁어모아서 쓴 것 뿐이다.
곡은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구성을 가진다. 술 취한 거 같은 초반부 랩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녹음을 하다보니 그게 어울릴 것 같아서 정신을 빼고 랩을 했다. 그러다가 약간 오기와 분노가 가득찬 랩을 보이며 마지막 부분의, 희대의 흑역사 자위라인을 선보이며 트랙은 끝나게 된다. 사실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고 쳐도 자위 라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진짜 그러냐?" 같은 의문들을 남겼다. 그리고 이 곡을 비롯해서 이 믹스테입의 작업은 당시 학교 근처에 있던 용수형 (devin) 의 자취방에서 이루어졌는데 처음 가사들을 들고 형한테 들려줄때도, 굉장히 부끄러워했고 감안하고 들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저 라인이 팩트인지 아닌지 밝히기 전에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최근에 리뷰를 썼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마음이 폐허가 된 주인공 신지가 아스카에게 위로를 구하러갔다가 그만 옷이 벗겨진 아스카를 보고 자위를 하고 손에 묻은 정액을 보며 자기가 스스로 최악이라 되뇌이는 장면이 있다. 물론, 그 장면은 감독의 섹슈얼한 상징이 있다고 (자세히는 전 리뷰글을 참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단지 신지의 정신적 상태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면 이 라인 역시 정확하게 의도가 맞아떨어진다. (심지어 장면의 구성마저 내가 생각한 그림 그대로이다.) 한 마디로 내가 이 정도로 비참하고 혐오스럽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장치다.
- 나중 얘기지만 저 라인을 쓴 것을 후회까진 안하지만 좀 더 돌려쓸걸 하는 생각도 있다. 당시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런 노래들을 교회사람들이 들었는지 나에 대해서 기도해준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그런거 떠나서 교회 사람 비롯해서 내 지인들이 사람들에게 내 노래 들려준다고 할 때면 너무 당당하지 못했고 죽고 싶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면 내가 이 노래로 락힙합에서 하는 랩퍼사냥이라는 오디션에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겨우 뮤지션들의 그린라이트를 받아서 통과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sns에 올리자 사촌형이 그걸 고모한테 들려줬고 얼마 후에 있던 삼촌 결혼식에서 이 노래가 모두에게 들려질 뻔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얼굴이 씨뻘개지면서까지 말려서 결국 그런 일은 안 일어나긴 했지만...-
그리고 이 노래에 지대한 영감을 준 것이 있는데 바로 홍상수 영화이다. 홍상수 특유의 찌질한 남성 느낌. 그만큼 우울한 어두운 화면과 그냥 아무 주관도 없이 찍어만 대는 카메라의 시선. 바로 그것에 포인트를 잡아서 이 노래를 썼다. 랩퍼사냥에 지원을 했을 때도, 홍상수 영화같은 노래라고 소개를 했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이 노래는 지지리도 찌질하고 혐오스러운 한 20대 초중반의 남성을 찍은 다큐같은 노래고 곧 이 믹스테입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암시하는 티저같은 트랙이다. 그래서 인트로라는 제목 말고 부제로 Scene#23 이라고 단 것도, 영화 속 한 장면같이 표현하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