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홀로서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다.
처음엔 막노동, 영화 엑스트라, 택배 상하차.
남들 다 그렇듯 처음엔 그랬다.
그리고 전공에 대한 스케일 업을 결심했다.
제대 후엔 검은 모니터 안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가끔이지만 아쉽다는 생각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학창 시절이라고 할만한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알았다.
나에게도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운 학창 시절이 있었다는 걸.
이번 주말에 ~~~~에서 연락이 왔다.
작년에도 지원했고 올해도 지원했다.
작년에는 한 발자국이 부족했고 올해는 한 발자국은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라가기 전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
장소는 비교적 가까웠지만 면접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선택을 해야했다.
둘 다 원하는 곳이라서 고민이었다.
'일단은 올라가자.'
숙소로 가는길.
신도림역에서 환승했다.
신도림역은 제대 후 영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위해 왔던 적이 있던 곳이다.
이 역을 걸으며 지난 날의 내가 기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날이었고 신도림역엔 긴 계단에서였다.
어떤 할머니가 두 손에 짐을 가득 들고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가?
24개월 나라의 녹봉(?)을 받은 사람 아닌가?
당연히 목적지를 물었고 두 손가득 할머님의 짐을 들고 할머님의 말씀대로 출구까지 들어드렸다.
출구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정~말 큰 복 받을거야, 청년."이라고 하셨고 내가 미소를 보내며 인사하고 가려고 하자 약간(?) 답답하신듯. "아니~정말로 큰 복 받을거라니깐? 정말~"이라고 하셨다.
이 때를 기점이었을까?
좋은 일은 실제로 많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어디에선가 생각지도 못 한 도와주는 분들이 나타났으니깐.
뭐 이런 생각들이 난 신도림역.
그리고 그 날의 내가 걸었던 길과 나.
오늘 내가 걷는 길과 오늘의 나.
체감상 어제 같은데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는 현실과 함께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는 작년 시험장에 가던 길에 '와..이런 데에서 자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지?' 했던 곳이다.
숙소 입구를 들어오며 신도림역에서처럼 떠올랐다.
오늘의 답은 '그게 바로 나야 !'
작년의 나.
올해의 나.
한 해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성장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과 함께 이번에도 정의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정말 아쉬웠다.
학창시절이라고 할 만한게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학창시절이라고 해봤자 검은 창 안에서가 다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깐.
나의 학창 시절은 나를 스케일 업하기 위한 이 순간들 하나, 하나가 모두 학창 시절이었다.
몸이 고통스러울때까지 버티다보면 나는 몇 년 전부터 설정해놓은 휴대폰 배경글을 가끔 본다.
"버티고 버티며 버티자."
정말 열심히 버티다가 보니깐 어느 순간 글로벌 기업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조금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지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서 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이불킥을 하고 싶다.
그만큼까지 더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