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나서 쓰기 시작한 글이 마침표를 찍어내고 보니 새벽 3시네요.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글을 다듬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눈은 계속 감기고.. 몸도 많이 피곤하지만, 참 오랜만에 새벽까지 글을 써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글을 읽는 단 한분에게라도 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시작해 봅니다!
제주 여행기 (07.20~23), 2일차(1)
- 일정 : 성산(아침식사, 관광ⓑ) - 서귀포(관광ⓒ, 점심식사, 관광ⓓ) - 애월(지인과 함께)
- 식사 : ④ 바다의 집 - ⑤ 카페 플레이커피랩 - ⑥ 사계바다 - ⑦ 제주횟집
- 관광 :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 용머리 해안 / 하멜 박물관 - ⓓ 건강과 성 박물관
혹시 해장을 하기 위해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나와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다. _ by Joe
바보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가끔 제대로 해장하고 싶어서 술을 더 마실 때가 있다. 몇 년 전 회식자리에서 '제주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성게 미역국'이었다. 마침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성게 음식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한 뒤 지친 속을 달래러 이곳으로 왔다.
'크으-! 사진만 봐도 마시지도 않은 술이 벌써부터 해장되는 기분이다!'
평범한 미역국에 성게 하나 들어간다고 무슨 특별한 맛이 나겠어? 라고 묻는다면, 라면을 끓일 때 콩나물이라도 하나 더 넣어 끓여보라고 답해주고 싶다. 콩나물 넣고 끓인 라면도 맛이 확연히 달라지는데, 하물며 미역국에 성게를 넣는데 어찌 맛이 같을 수 있을까. 지친 속을 바다의 풍성한 맛으로 달래고 있자니, 내가 제주에 있구나 라는 걸 아침부터 느끼게 된다.
속을 풀어주었으니 든든히 채워 줄 준비가 완료되었다. 미리부터 말하자면, 이곳에서 먹은 '성게 비빕밥'은 제주에서 먹었던 음식 Best 3 안에 들어간다. 사진을 보면 이곳의 비빕밥은 내륙의 것과는 구성이 조금 다르다. 내륙의 비빕밥이 산나물과 계란, 그리고 장을 넣어 양기를 보충하는 느낌이라면, 제주의 비빕밥은 바다에서 난 미역과 성게, 그리고 육지에서 났지만 비교적 수분기가 많은 오이 같은 재료가 들어간다.
스~윽 비벼 먹었을 때, 그 첫 맛이 일품이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먹는다. 양념 풍부한 게장을 게 껍대기에 넣어 밥을 스~윽 비벼 먹었을 때의 감동을 아침부터 느낄 줄이야. 이 이상의 설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첫 맛 만큼은 꼭 먹고 느껴보아야 하는 영역이다. 일출봉은 가지 않더라도 여기는 꼭 들려보길 권하고 싶다.
맛과 여행에 대한 공감이 우리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 줄지.
식사를 마친 뒤 꼭 들려야 한다며 온 곳에서, 1년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마지막 여정으로 '제주'를 택했던 기억이 났다. 20대의 첫 여행을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며 시작했기 때문에, 20대의 마지막 여행 또한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며 마무리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3박 4일 간의 자전거 일주를 마쳤을 때, 기대했던 느낌(긴 여행이 끝났다는 것에서 밀려올 것이라 예상했던)은 오지 않았다. 1년이나 집 밖을 떠돌았는데, 20대의 온갖 것들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는데,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국에 왔는데, 왜 별다른 느낌이 없었을까. 몸만 일찍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 영혼은 여기까지 채 오지 못하고, 아직 어딘가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갤러리 내부 공간에 포커스를 맞추어 1장만 찍겠다고 직원의 동의를 구한 뒤 찍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김영갑 사진 작가'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 느낌을 붙잡고 천천히 그의 사진을 둘러보았다. 바람을 담은 푸른 풀밭, 해질 무렵 어슴푸레한 산 자락의 희미한 선, 그의 사진에는 제주의 혼이 담겨 있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어떤 대상을 통해 알게 될 때가 있다던데, 그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있어야 할 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마친 내 몸은 빈 껍대기의 모습으로 우두커니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은 것 처럼 고요한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 어딘가에 있을 그 무엇에 작별 인사를 남기고 왔다. 다음에 올 때에는 어딘가에 놓고 온 영혼과 함께 오겠다며.
그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두오막에 왔다. 계절이 바뀌었고, 걸려있는 사진이 바뀌었지만, 그때의 느낌만큼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우면서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던 그 느낌.
3개월 만에, 다시, 그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내 여행이 끝났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혼 없이 비어있는 껍대기를 가지고 아둥바둥 거렸던 지난 3개월이 떠올랐다. 여행이 그립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빠트린 것 같은 느낌 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미적지근한 삶이 버겁고, 몸이 기억하는 만큼 보다 조금은 더, 무거웠다. 먼저 귀국해버린 몸은 힘을 써야 할 방향을 잃은 채 하루가 소진될 때까지 애쓰고 되살아나길 반복했다.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애쓰느라 지쳐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순간 찾아온 마음의 평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여행은 비로소 끝난 것이었다. 미적지근한 일상과의 경계에 놓여있던 긴 여행을 매듭짓고 나니, 내 앞에 놓여있는 일상과 여행이 새롭게 느껴졌다.
결국엔 시간이다.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에 인생도 흘러가는 것이다. 흘러가는 것은 때로는 그냥 흘러가는대로 보낼줄도 알아야한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사실은, 대게는 지나고 나면 후회되는 시간으로 남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일상에서는 찾지 못했던 깨달음의 작은 퍼즐 조각을 찾게 해준다. 서두에 말했듯(Intro), 이번 여행은 일상의 결핍을 하나씩 수집해나가는 여행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지나칠 수 없었던,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던, 그리고 결국엔 긴 여행의 매듭을 지을 수 있게 해준 김영갑 사진 작가의 글로 이번 여행기의 매듭을 짓고자 합니다.
제주 여행기 (07.20~23) 2일차(2). by 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