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면서 책장을 정리하며 띄엄띄엄 책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책장의 절반은 자기계발서, 나머지는 여행책, 에세이, 소설 등의 잡다한 책들이 자리하고 있네요. 소설이나 시같은 문학 작품들에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작가가 있으면 몰아서 사서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감이 있지만, 생각 난 김에 하나 더 써볼까 합니다.
소개할 책은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입니다. 1979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기고했던 글들, 또는 쓰고 기고하지 못했던 정말 잡문집입니다. 페이지는 500페이지에 달하지만 말이죠. 500페이지라고 해서 부담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꼭 처음부터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요. 제목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어보세요.
살아오면서 상을 받으며 했던 수상 소감과 인사말들, 음악에 대하여, 언더그라운드에 관하여,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에 관하여, 인물에 대하여,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생각 한 것, 질문과 대답들, 짧은 픽션, 소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설과 대담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책의 400페이지부터는 녹색 페이지 입니다. 눈에 띄어요)
그 중 일부 하나의 이야기를 실어 볼까 합니다. 항상 잡문의 제목과 함께 어떠한 사연에 의해 글을 썼고, 또 어떤 느낌이었는지 짤막한 코멘트가 담겨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나무는 보고 숲은 못보고>
뉴 루디스 클럽이라는 음악 잡지에 쓴 글입니다. 94년 6월 비틀스의 특집호를 위해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은 기억이 납니다. 비틀스를 잘 알지 못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에 관해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 잡문에 대한 소개
하루키는 1980년 처음으로 비틀스의 레코드를 샀다고 합니다. 일본을 떠나 2~3년 유럽에서 생활할 때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터무니없는 성욕에 난데없이 습격당한 것처럼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들었고,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비틀스의 음악이 좋구나라고 실감했다고 하네요.
그 무렵 <노르웨이의 숲> 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첫머리의 비행기 장면에 나오는 음악 역시 '노르웨이의 숲'이어야 했다고 합니다. 소실의 제목을 붙이기도 전인데도 말이죠. 그 이유는 의식하든 못하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하루키의 몸에는 그들의 음악이 깊숙히 배어 있었고, 그것이 세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이야기는 'Norwegian wood' 라는 제목이 '노르웨이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가구'가 아니냐는 오역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하루키의 생각을 풀어 쓴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어휘 자체 문법 해석으로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마치 '나무는 보고 숲은 못 보는' 일이 아닐까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다른 이야기로 존레논의 'norwegian wood'라는 노래가 원래 'knowing she would'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 였으나, 음반사에 부도덕하 문구는 녹음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knowing she would를 말장난 하듯 비틀어 norwegian wood로 바꿨다는 썰도 있습니다. 물론 진위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식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순서에 관계없이 이어집니다.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무엇을 이야기 할지 몰라 이런저런 주제를 던지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