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일입니다.
안동 하회 마을이 생각보다 넓어, 강 주변까지만 둘러 보았네요.
https://steemit.com/kr/@khaiyoui/2jngfo-54
충효당
서애 류성룡의 종가로, 보물 제 414호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충효당 건물을 바로 대하게 된다.
다른 종가의 사랑채들이 대개 기단을 높이 쌓거나 누마루처럼 띄워서 권위적인 입지를 취하는데 비해
이 충효당 건물은 기단이 낮아 눈높이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네이버 참고)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사랑채 위에 달린 현판의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조선중기의 명필, 미수 허목이 서애가 충과 효를 겸비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써준 글씨라고 해요.
여느 기왓집과는 다르게 위화감없이 오히려 수수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무의 색때문인지, 세월의 흐름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른편으로 돌아 들어가니 커다란 소나무와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작은 문이 있었습니다.
서애의 위상인 듯, 수많은 가지가 쭉쭉 뻗어 있는 오래된 소나무도 있었구요.
넓은 충효당 입구입니다.
전문 가이드이신지, 혹은 동네 주민인지 모를 아저씨 한 분이 기분 좋은 입담으로 관광객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도 들려주셨어요.
양진당
하회 류씨의 대종택이며, 겸암 류운룡의 종가로, 하회에서는 드문 정남향집으로 보물 제 3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참고)
대문 바로 앞에 보이는 사랑채에는 “입암고택”이라는 글자가 보였어요.
입암 류중영의 고택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굳게 닫힌 문 때문인지, 건물의 구조때문인지 충효당과는 달리 조금은 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였습니다.
양진당을 나와 다시 마을을 둘러봅니다.
담벼락 너머 기왓집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구요.
굳게 닫힌 기와문
옛 추억 가득 소환되는 듯한 흙담 골목길
눈 앞에 있지만, 왠지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 곳에서도 아직 사람들이 산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예전에 이 곳의 생활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현대의 지금 생활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겠지요?
유네스코 등록이후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을 이 곳,
그래도 이 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진짜 “삶”이 있는 곳!
배려, 존중, 그리고 공존이 필요한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찬히 둘러본다면 하루도 부족할 곳이였어요, 안동 하회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