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난번에 이어서 써볼까요?
33:31, 오델로라는 경기에서 가장 적은 차이로 승부가 난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양측의 실력이 비슷하거나, 아니면 줄곧 이기던 사람이 실수를 범해 원점으로 돌아왔다던가,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양쪽의 경기력은 비슷했다는 뜻이 되겠네요. 보통 33-31로 이긴 경우에는 신승(辛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아슬아슬한 승리라는 거겠죠.
서론이 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한끗을 놓친 쪽은 제 쪽이었습니다.
대여섯 칸을 앞둔 시점에서 최선길로 갈 경우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판단 미스로 인해 패배하는 길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사실 경기 내용이 아직도 잘 기억나는데, 경기 내내 전 끌려다니기만 했습니다. 상대방이 조금만 더 신경써서 두었다면 돌갯수 20개 이상의 차이로 경기가 종료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큰 실수로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고, 이어지는 제 실수로 상대방의 아슬아슬한 승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무난히 저의 승리이지 않을까 예상했던지라 약간의 충격은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상대 선수의 대회 성적은 1승 6패였습니다. 그 1승을 선사해준 것이 제 방심이었다는 얘기죠.
4라운드까지 제가 가져온 성적은 1승 3패, 명인전이라는대회를 생각해보면 납득이 안가는 스코어는 아니지만, 기대했던 것 이상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길 수 있다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시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스코어이기도 했습니다만 씁쓸한 마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분은 하승섭 五단이셨습니다. 이 분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쓸 말이 많은데, 우선 이분은 시각장애인이십니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처럼 판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죠. 오델로 판 또한 일반적인 것이 아닌 시각장애인 전용 판을 사용하십니다. 흑과 백 양면이 다른 촉감을 내는 판입니다.
그렇다는 건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만으로 머릿속에 판의 현재 모양과 앞으로 두어나갈 모양들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인데 솔직히 저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마 전 지금 당장의 모양을 그리는 것초자 벅찰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보통 사람보다 실력이 크게 떨어져야 정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五단이라는 단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실력자십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감상은 감상이고, 어쨌든 제가 썩 좋지 않은 성적을 갖게 된 상황에서 상황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면 이겨야 하는 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잘하는 사람들만 출전하는 명인전이고, 최선을 다해야 겨우겨우 몇 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다시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승섭 五단과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판이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 다르다 보니(대표적으로 돌이 자석이라는 것과 각 칸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있겠씁니다. 일반 판의 경우 돌은 그냥 돌이고 판에 선만 그어져 있습니다.) 처음엔 모양도 잘 안보이고 어색했습니다.
그래도 점차 적응해 나가면 경기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경기의 경우에는 큰 실수가 나왔다던가 처음부터 밀리기만 했다던가 하는 건 없었습니다. 경기 마무리에 들어가서도 크게 유리하다던가 불리하다던가 하는 것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끝나기 몇 수 전에야 겨우 졌다는 것을 깨다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24-40으로 제 패배였습니다.
적은 점수 차이가 아니었음에도 왜 지고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경기에 한시간 정도를 소모하니 이미 4시간동안 머리를 쓴 셈이고, 그 덕분에 집중도 좀 흐트러지고 멍했던 것 같습니다. 5시간 동안이나 머리를 쓰는 건 아무래도 힘드니까요. 사실 결과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건 집중력이 흐트려져서이지만 그게 경기에서 패배한 핑계가 될 수는 없겠죠? 다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시간일 테니까요.
여담으로, 경기 후 작성한 기보에 서명하고 있는데 이전에 경기가 끝나신 협회장님이 오셔서 하승섭 五단은 최소 두 수 이상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플레이해야 승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눈으로 바로 볼 수 없고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두 수 정도를 보고 플레이하신다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열정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어쨌든 5라운드까지도 패배하며 1승 4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게 된 저는,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경기를 다 이겨도 반타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경기하도 더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까지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전 대회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었던지라, 어느정도 자만심이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건 보통 대회가 아닌 프로 선수들만의 대회이고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프로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최선을 다하는 대회인데 적당히 승을 챙겨올 것이란 건 정말이지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결과가 어찌 되든 중간에 포기하거나 건성으로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는 것이 마땅히 기사로써 가져야 할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모두가 다섯 시간 가까이 열정적으로 경기를 치뤄 왔고 지친 상태이지만 나머지 두 시간마저 불태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저만 의욕이 없는 자세로 경기에 임한다면 계속해서 질 것은 불 보듯 뻔하죠. 물론 현실이 영화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서 경기에 임한다면 아슬아슬하게 계속 승리를 가져올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발버둥을 치고자 했던 것 같네요.
바로 지난 달 입단했던 전 풋내기 기사에 불과했고, 初단인 저에 비해 당시 참가자분들은 단수가 꽤 높았기에 사실 크게는 저와 세네수 정도의 차이가 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여섯 번째 라운드 매칭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부대 복귀 이후에 바로 올립니다. 오전 내내 잠만 잔거같네요ㅋㅋ
*사진이 없는건 마땅한 사진이 없기 때문에.. 휴가나가서 올린 글(https://steemkr.com/kr/@ksc/73hidy)에서 보실 수 있듯이 폰이 망가져서 올릴만한 사진 또한 백업해두려던 제 목적을 이루지 못했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