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E A D L I N E
내 나름의 마감치던 날
내 나름의 원고 마감기한을 정했다.
사실 A4 20장 정도 남짓정도 되는 원고를 책이라 부르기도 뭐하지만, 작가가 아닌 나에게는 꽤 되는 분량이었다. 블로그의 글들을 복사하고 보니 흐름도 엉망이고, 그대로 쓸 수 있는 글이 별로 없었다. 글감을 늘어놓고 순서를 겨우 짜 맞추고 보니, 현재 내가 이런 책을 왜 만들게 되었는지 지난 이야기들이 없었다. 마치 문제가 생긴 에피소드가 통편집된 듯이 그 얘기만 없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사회생활하면서 상처받은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아리고 너무 아파 어디 보이지 곳에 쑤셔 박아 놓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얘길 시작하자니 몇 주간 컴퓨터 앞에서 괴로워했다. 키보드를 만졌다가 이내 딴짓으로 회피하기를 며칠 째. 그때 그 시간들을 떠올리자니 시작이 너무 힘들었다. 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이 고통을 어찌 견디는지… 일주일 내내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주말이 되었다. 내가 데드라인으로 정한 주말이.
AM 6:30
토요일 아침 갑자기 눈이 떠졌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주말이라면 더 흔치 않은 일인데, 무언가 나를 이끄는 힘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것도 아침 6시 30분에. 문득 작은 용기가 솟아 오늘은 꼭 내 안에 있는 그 잘못 뒤틀려 아물어버린 상처를 마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몇 주 만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손가락을 놀릴 준비가 되었다.
AM 9:00
글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만져놓고 드디어 회사에서 힘들었던 내용을 적을 차례였다. 어떤 음악이든 필요했다. 유튜브에서 무심한 듯 잔잔한 추천 리스트를 재생해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오래전 마음이 힘들 때 들었던 노래가 갑자기 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거 위험하다.. 하..." 그리곤 별거 아닌 세마디에 폭발하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있는모습 그대로.
너의 모든 눈물.
닦아주고 싶어.
마침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끓어오르는 단어들을 우르르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고 단어들도 쏟아졌다. 그리고 상처받았던 지난날의 나와 만났다. 글을 쓰면서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안의 상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그리고 내가 괴로울 때마다 용기를 주었던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차례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름 모를 이 공간의 그대들의 응원도. 나는 작가도 아닌데, 수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아 이런 일을 벌였고, 실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스팀잇에서 만난 '엄청난 글을 쓰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절대 평범하지 않은 당신들'을 한 명 한 명 빛나게 만들어주리라 마음먹었고, 깜냥이 안 되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스팀잇에 글로 토로했다. 그 글도 울먹이며 썼으니… 신이 나를 봤다면 "너 참 못난 얼굴로 글을 쓰는구나"하고 생각하셨을 거다. 이 날의 글쓰기는 다른 날과 확실히 달랐다. 이전의 글쓰기는 머리에 떠오른 단어를 문장으로 옮겨낸 것이 었다면, 이 날은 나를 발가벗겨 뒤틀려 아물어버린 상처를 벌리고, 살갗 사이사이 배어있던 단어들을 끄집어내서 써 내려갔다.
AM 12:00
아직 전체 글의 절반 정도도 쓰지 못했는데, 감정이 도무지 주체가 되지 않아서, 몸을 움직이면 낫지 않을까 싶어 찬물에 세수를 하고, 동네 요가센터로 요가를 하러 갔다. 시작한 지 이제 막 2주 차여서 수업의 흐름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 날은 Inside floor란 수업이었다. 4박자의 곡을 틀고 리듬에 맞춰 요가를 하는 수업이다. 온몸을 집중해서 힘든 동작 하나하나를 익혀가고 있었는데, 마음이 추스를 때쯤 선생님이 또 날 울릴 만한 곡을 트는 것이었다. "아 오늘 왜 이러나… 전 지구가 날 울리려고 작정했구나." 그 날 선생님이 고른 곡은 “Say it again”. 선생님 저 오늘 마음이 방어가 잘 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이런 노래를 트시면 제가 무너진다고요...
Say it again - Frances
You run with the sun in your eyes
너는 네 눈 속의 태양을 향해 달리지.
Arms open to whatever you find
팔을 벌려 네가 찾는 게 무엇이든
Then there's me
그럼 거기 내가 있어
별 거 아닐 수 있는 가사가 하나하나 와서 박혔고 아렸다. 결국 요가를 끝나고 집에 와서 또 울어대며 글을 썼다. 나의 가장 아름다웠을 청춘을 썩은 사과 밑에서 쓸모없고 나약한 존재로 만든 것은 나였다. 지난 직장생활의 상처 속에 나 자신을 다독여주지 못했다. 잘 해내고 있다고, 잘 버텼다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도 아름답다고 진작에 내가 나 스스로 말해줬어야 했는데. 하루 종일 글을 쓰다 새벽이 되어서야 지쳐 잠들었다.
다음 날, AM 8:00
어제와 같이 아침부터 일어나 글을 이어나갔다. 지난 몇 년간의 나의 감정들과 마주하면서 마음은 말랑말랑해졌다가 단단해졌다가 수없이 변했다.
"별거 아닌 일들을 글로 쓰는 게 그 뭐 대단하다고 이렇게 소란을 떠니."
“남들도 그 정도 아픔쯤은 다 있어.”
“그냥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면 안돼?”
담담한 나와 위로가 필요하다고 안아달라고 소리치던 나 사이에서 결국엔 담담한 내가 졌다. 지난날의 나를 힘껏 끌어안아줬고, 눈물과 생각과 아픔 상처를 다 쏟아내고 나니 무언가 후련함이 밀려왔다. 끝맺는 말을 쓰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곁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있을지 모르는 절대자에게 말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하다고 손을 내밀어준 그대들을 하나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나의 얼마 안 되는 글쓰기 경험으로 책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는 고통스럽고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내 상처를 온전히 마주했던 이 주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1줄 요약 : 엉엉 울며 글 써서 결국 마감쳤습니다. 책 내용은 울면서 쓴거치곤 담담합니다.
*잊을 수 없는 주말이었던지라 PEN 클럽 공모전에 출품해봅니다.
*네..너무 피곤해서 집에와서 쓰러져자다가 다시 깼는데 잠이 안와 쓴글입니다.
*사실 좀 피드에 묻혔으면 해서 새벽에 올립니다ㅋㅋ
*오늘 무상으로 스파임대해주신 독거노인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눠주신 것 많이 나눌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