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위해 번호일기를 적용합니다.
1
아이가 의사소통이 될만큼 커서인지 아이의 말 하나하나가 부모님께 애교로 다가오는 듯 하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부모님의 근심어린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적적했던 집안의 공기가 아이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시끌벅적한 가족의 이야기로 꽉 채워지고있다.
한참 손주의 재롱을 본 부모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시끌벅적 하니깐 사람사는집 같네.
2
내가 처음으로 술을 접했을때는 참 독특한 술맛을 경험했는데 특이하게도 맥주에 하드를 넣어서 먹는 아버지의 레시피 덕분이었다. 그때 당시가 고 2때였는데 여름에 이렇게 마시면 술이 아닌 음료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벌컥 들이켰던 생각이 난다. 그때당시엔 역시 술은 술이었... 그렇게 술을 배웠다. 30대가 된 지금은 아버지의 맥주+하드의 조합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3
특수기술자이신 아버지는 주로 객지생활을 하셨다. 그래서 내가어릴때 아버지 얼굴을 한달에 두번남짓 볼 만큼 많이 바쁘신 삶을 사셨다. 집안살림과 아이들 교육은 오로지 엄마 몫이었고, 아버지는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 두분의 어깨는 언제나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집에 오래 머무를때면 반가움도 잠시 부모님의 마찰은 끊이질 않았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서로 떨어져있었던 만큼 부딪치지 못해 쌓인 감정들이 섞이지 못한채 언제나 층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부모님은 주말부부로서의 삶이 더 편한듯 보였다.
지금은? 신혼부부보다 알콩달콩하시다.
4
아버지는 상당히 남성성이 강한 분이셨다. 언제나 강하시고 목소리도 크신,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정해져있다고 생각하신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변하신건 약 10여년 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때부터였다.
아버지와 전화통화 했을때 딸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셨는지 전화 사이로 들려온 아버지 목소리의 떨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야 자식이 둥지를 벗어나 혼자 날개를 펴고 제삶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하신듯 하다.
그리고 엄마를 대하는 태도와 사랑은 더욱 깊어지신듯 보였다. 아마도 마음만큼 표현을 못하셨는데 지금은 사랑하는 만큼 표현하시는 로맨티스트가 되셨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상대도 변하지 않아. 아빠가 노력하니까 엄마도 변하더라.
나도 남편과 지내면서 부딪힐 일이 많아지겠지. 그때마다 아버지의 말을 새기고 남편과 아이에게 좋은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5
며칠전 아버지와 저녁겸 반주를 했는데 그간 있었던 일, 일에서의 스트레스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60세를 넘어서인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계신듯 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하신 분이셔서인지 일에대한 집념이 강하시다. 지금까지 일에대한 자부심이 강하셨고 아직 일하고 싶으시지만 문제는 아버지의 나이였다. 작년부터 아버지의 나이는 일을 하시는데 제한이 걸려왔고 지금은 미국으로 시집간 딸이 오랜만에 손주와 함께 집으로 방문한 탓과 나이제한 때문에 일을 안하고계신다.
사실 동생의 예기치 못한 취업난이 아버지의 일에대한 집념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예전보다 강하진 않지만 아버지의 집념은 어느때보다 강하시다. 그런분이 은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건 생각보다 힘드실것이다.
아버지는 평소 자식들에게 내색한번 안하셨던 분이시다. 그런 강하신 분이 딸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신다. 나의 역할은 그저 아버지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것뿐 할수 있는게 없다.
이게 가족이 사는 법 아닐까?
6
며칠전 엄마 잇몸에 염증이 생겨 신경치료를 하셨다. 생각보다 심한 진통에 많이 괴로워하셔서 가족 모두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엄마는 아침일찍 치료를 하러 가시는데 진료를 잘하는 치과인건지 언제나 환자들이 붐빈다. 그래서 번호표까지 뽑으시고 몇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치료를 받으신다.
언제한번 아버지께서 일찍 밖에 나가셨다. 알고보니 엄마 치과 진료를 위해 번호표를 뽑고 오신것이다. 조금씩 통증이 가신다는 엄마의 말씀에 아버지가 뒤에서 한말씀 하신다.
아 ...이제좀 살것같네.
엄마가 많이 아파하셔서 지금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셨다고 한다.
피곤해하시는 엄마를 위해 몰래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사다주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정말 많이 자상해지셨음을 느꼈다.
아버지가 엄마의 모든것을 신경쓰게 된때는 엄마에게 갱년기가 찾아오면서였다고 하셨다. 그때 엄마의 예민함은 최고조에 달했고 그때 정말 잘해야지 다짐하셨다고 한다.
7
길지도 않은 글을 쓰는데 하루가 다 지났다;;;
활기 넘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여전히 두서없는 글이지만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