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다닐 때, 항상 웃는 상의 같은 반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이화랑이었고, 무슨 말을 듣든 웃어 넘겼다.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도 똑같았다.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 항상 가만히 있었다. 절대 자신의 의견을 꺼내는 법이 없었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끝내면 '나도 그게 좋아'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랑이는 자기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듯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자주 웃음을 짓는 아이긴 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화랑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나쁜 아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화랑이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웃음을 지어서, 웃음을 보는 나까지도 기분이 불편해졌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하면 '응...' '미안해...' '아니....나는 별로...' 정도의 대답, 그리고 그냥 '너 뭐 잘한다' 정도의 아첨밖에 없는 대화를 하는 건 아무 재미도 없었고 무의미했다. 결국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가는 친구가 있었다.
혹시 이 이야기를 보고 생각나는 친구가 있는가?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대답하고, 자신의 의견은 없고 항상 YES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말하는 yes란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만큼이나 위험하다. 욕망을 모르는 사람은 끊임없이 남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려고 한다.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면 칭찬받을 수 있고 자기가 쓸모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있기에 사람들에게 봉사하려고 한다.
내 대학교 후배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동아리란 동아리는 모두 들어가려고 하고, 거기에서 뭔가 역할을 나서서 맡으려고 하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기의 소명처럼 생각하면서, 언뜻언뜻 화를 내비친다. 사람들이 자신이 이렇게나 고생하는 것을 몰라준다고.
그 후배는 자신의 욕망이 뭔지 몰랐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자신의 욕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워지는 길을 택하게 된다.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볼까? 내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할 때 5600번 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고,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 거리는 대략 18km정도니까 걸어서 출근하면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만약 내가 걸어서 출근한다면 대표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어볼 것이다.
'걸어왔다구요? 아니 도대체 왜?'
'출근하려고요!'
참 어이없지 않나? 목적이 출근하는 거라면 훨씬 간단하게 버스를 타면 된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도 똑같다. 사랑받고 싶다면 동아리의 회장을 맡는 게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면 된다. 친절하고, 관심 가져주고, 언제나 진심으로 칭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고 모르는 것은 배우고, 뭐 기타 등등(받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는 황금률은 언제나 옳다.)
그래서 '출근하고 싶다'는 욕망을 직시하면 올바른 방법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된다. '사랑받고 싶다'라는 욕망을 알면,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욕망을 모르는 사람과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 지 아는가? 욕망을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불편해진다. 분명히 나에게 맞춰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다. 사실 당신이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욕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관심은 온통 자신에게 쏠려 있다. 남에게 맞춰주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이다. 같이 놀며 즐거워지는게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내 눈치를 본다. 혹시 내 말이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니? 니가 뭐라고 하면 내 의견을 바꿀게 -
그래서 같이 있으면 더럽게 재미없고, 짜증나고, 불쾌해진다. 자신에게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 놀면 뭐가 재미있겠어? 그래서 갈수록 그 사람과 있는 것은 귀찮고, 힘들어지는 일이 된다. '착한 남자들은 인기 없어' 라는 말이 있는데, 착한 남자란 말이 아깝다. 착한 게 아니라 상대방 눈치 보며 자기에게밖에 관심이 없는 거지! 착한 남자란 단어는 에릭남 같은 애들... 아니 에릭남 형같은 사람을 위해 있는 단어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 정말 피곤해' 또는 '나는 내가 욕망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이 칼럼은 후자를 위해서 썼다. 사실 이만큼 잘난척을 했으면 도움이 되는 방법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매일 느낌·욕구 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오늘 하루 있었던 사건을 쭉 돌아봅시다. 그 사건을 잘 떠올려보고 느낌/욕구 일기를 씁니다. 여기서 사건은 기분 좋>았던 일과 좋지 않았던 일로 구분해서 적는 것도 좋고 생각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적어도 좋습니다.
사건 1.
“오늘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느낌 : 걱정되는, 무서운, 야속한, 침울한, 지친
욕구 : 지지, 도움, 신뢰, 효능감, 희망사건 2.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며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느낌 : 힘이 솟는, 살아있는, 재미있는, 정을 느끼는
욕구 : 여유, 교감, 우정, 나눔, 소속감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1주일간 작성해보고,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친밀한 관계라는 욕구가 많이 나왔다고 하면, 나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욕구는 친밀한 관계인 것입니다.
그 친밀한 관계라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야속한, 지친’ 등의 감정이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건너뛰는 마음의 단계에서 인용>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알았으면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나도 자주 질문하기 위해서 질문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질문한다. 아무런 뜻도 없이 자동인형처럼 질문하거나 자동인형처럼 대답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닥치고 있는 게 좀 더 낫다(이 글이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30%정도 내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젠장!).
사실 모든 껴안음은 껴안김인 것처럼, 모든 사랑함은 사랑받음이다. 그래서 진짜로 사랑받고 싶다면 나도 진짜로 사랑해야 하고, 오래 생각해야 하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서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 욕망을 모르는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건 잠시 멈추기로 했다. 괜히 접근해서 멍청한 소리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게 나으니까. 오늘도 생각을 위해서 길게 글을 썼더니 조금 피곤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들과 진실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댓글 달러 가야지.
여러분 글에 다는 댓글의 90%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안심하세요! 10%는 뭐냐구요? 그건... 선..선의의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