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1
당신의 본질을 알고 싶다면,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보라.
엄마는 미술이나 음악에 꽤 관심을 가졌었다. 우리 가족은 같이 클래식 콘서트에 가기도 하고, 비엔날레 전시관에 가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와 동생은 중외공원의 과학실험관을 훨씬 좋아했지만. 어린이들 눈에는 버튼을 누르면 솟구치는 검정색 사철이 마법만큼이나 신기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누구의 곡인지도 모르는 연주보다는 훨씬 나았었지.
예술에 대한 엄마의 열의는 자식에게도 멋진 예술 교육을 시켜줘야겠다-로 번졌다. 다행히 피아노를 치는 건 꽤 재미있었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권유에 콩쿠르를 나가 보기도 했다. 배운 시간 대비 실력은 처참했지만(자그마치 10년을 배웠는데!) 재능 대신 시간을 갈아넣었고, 이왕 나간거 잘 해보자 싶어 열심히 연습했다. 그때 선생님도 꽤 만족했었다.
그러나 내가 무대 울렁증이 있다는 걸 무대 대기실에서 처음 알았다. 손에서 땀이 줄줄 흘러서 바지에 문질러 닦았더니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남는 걸 보고 기겁했고, 공연장의 그랜드 피아노를 연습의 1.2배속으로 두드리다 네 번을 실수했다. 심사위원은 종을 쳐 연주를 멈추게 했고, 엄마는 심사위원에게 ‘아이고, 좀 더 들어보지!’ 라며 정말 아쉬워했다.
그 이후로도 피아노는 가끔 쳤지만, 대학을 올라오고 나서는 피아노도 없고 해서 아예 그만뒀다. 악보를 외우고 있는 건 이제 하나도 없다. 다 잊어버렸다. 오히려 동생이 더 열심이다. 휴일 아침에 피아노로 치는 에반게리온 오프닝을 들으며 깨어난 건 나밖에 없을걸. 여튼 우리 가족에게 음악은 괜찮은 친구였다.
하지만 미술관과의 첫 만남은 악몽에 가까웠다. 제이슨과 프레디가 손을 잡고 ‘꼬마 녀석을 괴롭혀야지’ 정도로? 엄마는 오르세 미술전을 정말 보고 싶어하셨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우리를 데리고 상경했다. 삼촌 집에서 이틀 정도 머무르는 일정이었다.
다른 평행우주에선 지대한 감동을 받은 동생과 내가 테오와 고흐(아니 피카소와 렘브란트로 하자)같이 위대한 화가가 되는 미래도 있었겠지만, 이번 우주는 아니었다. 엄마의 과보호가 화를 불렀다. 엄마는 춥다고 바지를 두 겹, 윗옷을 네 겹 입혔다. 안타깝게도 오르세 미술전은 반팔을 입고 돌아다녀도 괜찮을 정도로 히터를 틀었고, 나는 안동찜닭이 된 기분을 느끼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정말 죽도록 더웠다는 기억밖에 안 난다.
여동생에게 이 때를 기억하냐고 물어봤더니 너무 더웠다고 똑같이 말했다. 나보다 네 살은 어렸을 텐데 그걸 기억하다니. 심지어 우리가 엄마에게 너무 덥다고 제발 좀 나가자고 졸랐다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온 방 안을 굴러다닐 정도로 아깝지만,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아, 기억나는 작품이 딱 하나 있다. 바로 고야의 ‘사투르누스’.
뭐 무섭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우오오- 이 사람 그림 진짜 기억에 남는 걸. 이런 느낌.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보였구나.
(이 귀여운 얼굴 뒤에 어떤 흉악함이 숨어 있는 것인가?)
하여튼 그 이후로는 미술과 인연이 없는 삶을 살다가 동생과 같이 고흐 자화상 전시전에 가거나, 하여튼 3년에 한번 꼴로 미술을 감상하며 대한민국 평균 미술 관람 횟수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그때 패밀리닥터님의 그대 –나의 뮤즈 미술전 티켓을 받았고, 토요일에 갔다왔다.
고흐, 르누아르, 카유보트, 클림트, 마티스
이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전시회에서 화가들이 사랑한 것을 보고... 그들이 무엇을 사랑했는지를 보고...화가들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그들이 캔버스 앞에 앉아 붓질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도 그 뒤편에 앉아 있을 수 있으면 한다. 아를의 강가를 그리며 하늘에 별을 하나씩 띄울 고흐를 상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한 낮의 태양에 그늘이 다 씻겨나갈 듯 황금빛 밀밭을 그리다가도... 밤이 되면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리고,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밤하늘을 덧칠하며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기차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고흐.
고흐는 인간관계가 서툴렀다. 큰아버지가 소개해 준 자리들에서 끊임없이 뛰쳐나왔고, 약한 자들을 위해 살고 싶어했지만 방법을 몰랐다. 선교사 시험 준비를 하다가도 교회에 환멸을 느껴 뛰어나왔고, 병든 인간을 사랑하려고 했었다.
사람은 너무나도 복잡하여 사랑하기 쉽지 않다. 내가 사랑한다 하여도 내게 상처를 주는 일도 왕왕 흔하다. 결국 고흐는 인간 대신 아를의 풍경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조그만 구원들을 찾았을 것이다... 수많은 해바라기, 황금빛 밀밭, 올리브 나무 숲, 반짝이는 태양. 태양 아래에 서 있으면 그늘은 하나 둘 지워지고, 상처받지 않을 듯 기쁨이 가득 차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잠깐의 구원을 찾았다고 해도 어찌 사람을 버릴 수 있었을까?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장미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이 잊을 수 있을까? 고흐는 정신병과 우울 사이에서 시달리다 결국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고통은 영원하다...'
이렇게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흐와는 정 반대로 삶의 즐거운 순간을 화폭에 잡아낸 화가도 있다. 꿈과 희망에 부푼 파리를 자신의 뮤즈로 삼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유방, 둥글다, 따뜻하다. 하느님이 여자의 젖가슴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내가 화가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란 말을 남긴 르누아르.
과학 기술이 태동하고, 인간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믿던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시대의 그림답게,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뼈대를 넣어 부풀린 치마, 홍조를 띈 뺨,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는 얼굴들, 춤, 춤, 빙빙 도는 춤. 때로는 너무나 기뻐 보여 슬픈 것도 있는 법이다. 르누아르는 행복한 시대를 연 과학 기술이 서로를 죽고 죽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은 했을까? 르누아르가 죽기 5년 전, 제 1차 세계대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년에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림을 그렸다는 르누아르를 보며, 역시 화가는 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어두침침한 세상에 빛을 불어넣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클림트. 클림트는 에밀리를 사랑했다.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키스'. 마치 쏟아질 것 같은 금박들, 영원히 멈춰 있을 것 같은 사랑, 사랑. 아, 사랑이여.
사랑이란 건 무엇인가? 불을 켜놓고 잠들었으면 몰래 가서 불을 꺼 주고 이불을 정리해 주는 것인가? 아무 일 없이 장미를 건네주는 것인가? 이 과자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나중에 드세요 하고 건네주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인가. 당신의 살갗 속으로 들어가 당신처럼 생각하고 당신처럼 걷고, 당신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 당신은 뭘 사랑하나? 당신의 뮤즈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