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는 음악을 참 좋아하십니다.
아빠라 부르기엔 아빠가 될 나이가 되어서 철이 안 든 것 같고, 아버지라 부르기엔 장성한 자식이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아서 보다 친근하게 아부지라 부르는 저희 아버지요.
아부지 때문에 저희 집은 심야가 아니고서는 항상 음악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뭔가 우아하게 티 한 잔 해야 할 것 같은 잔잔한 분위기는 아니였고, 항상 조금 크다 싶을 정도로 매일 음악이 넘쳤지요. 화장실에 문을 닫고 들어가도 음악 소리는 들렸고, 샤워기를 틀어야 좀 안 들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기억할 수 있는 최대치의 어린 시절로 스트리밍 바를 끌어다 놔도, 음악은 항상 들리고 있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는 아부지 바이닐을 바닥에 꺼내놓고 바이닐 끼리 비벼대서 전부 버려야 했던 때도 있다네요. 엄마 말이 아부지가 바이닐을 턴테이블에서 꺼낸 다음에 또 다른 판을 올려놓을 때면 제가 땅바닥에 붙어서 매번 구경했더랍니다. 그렇게 기어 다니던 제가 두 다리에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보고 배운 걸 따라 한 것 같다고 하시네요.
좀 더 커서도 아부지가 음악 들으실 때면 옆에서 같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Vinyl 케이스나 CD 케이스도 괜히 한 번씩 구경하고. 듣다가 좋은 음악이 나오면 이 음악 뭐냐고 여쭤봤죠. 그냥 좋았을 뿐이에요. 유치원 갔다 와서 어떤 음악이 듣고 싶어서 엄마한테 틀어달라 쫄라대면 엄마는 틀어주질 못하셨어요. 무작정 쫄라대는데 그 CD 가 어느 건지 아실 턱이 없지요.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들어서 좋은 음악이 나오면 케이스 표지에 어떤 그림이나 사람이 있는지를 기억했어요. 그리고 혼자 틀어서 듣기 시작했죠.
전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던 시절에 저희 집 안방에 스피커가 있었데요. 그걸 제가 해먹었다네요. 물론 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음이 나오는 우퍼 부분을 그림 그린답시고 전부 찢어놨답니다. 그래서 새로 하나 사셨던 거 같은데, 그 오디오는 기억이 납니다. 티비 양쪽에 놓인 넓고 낮은 스피커가 내는 소리가 좋았어요. 학교 다녀오면 엄청 많은 CD 들 중에서 하나 골라 틀어놓고 씻고, 밥 먹고, 숙제하고 그랬습니다. 그쯤 돼서야 케이스에 적힌 글씨들을 읽었던 거 같아요. 물론 알파벳만 읽을 줄 알았습니다. 브이, 아이, 브이.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검정색 플라스틱의 앰프는 없어지고 은색 알루미늄의 앰프가 있네요. 그리고 점점 스피커 개수가 늘어갔습니다. 넓고 낮은 스피커 대신에 날렵하게 생겨서 키가 커진 스피커와 티비 밑, 소파 양옆으로도 하나씩. 마치 음악이 하늘에서 내리는 거 같았어요. 어떻게 소리가 이렇게 들리는지 너무 신기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왜 아부지한테 화를 내는지는 이해하지 못할 즈음의 나이였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녀오니 LD 플레이어가 생겼네요. 엄마는 또 샀다고 잔소리를 하십니다. CD 만큼 또 LD 를 모을 거냐고. 그저 신나신 아부지는 대꾸하지 않으셨어요. 저도 신났습니다. 엄마가 얼마냐고 다그치셨죠. 아부지는 용감하게 숫자를 말하셨어요. 앞자리 숫자를 바꾸는 대신 0을 하나 빼버리셨죠. 그렇게 아부지는 웃으시고, 유이하게 0 이 빠진 것을 아는 저도 웃었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입시를 준비했고 캠퍼스를 오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먼 타지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랩탑 스피커의 말라비틀어진 음악 소리와 귓가만 겨우 울리는 이어폰 소리로 음악을 들었는데, 그 소리들은 나라가 불러 다녀온 곳에서 듣던 음악 소리와 닮아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페이첵을 받기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갔습니다. 눈을 못 뜨게 내리는 눈마저 허드슨 강바람에 날려 쌓이지 않았던 추운 겨울날, 스피커를 사들고 돌아왔어요. 아직 어리버리한 사회 초년생은 코 묻은 돈으로 스피커를 샀고, 라면과 달러 버거로 2주를 연명했지요. 하지만 얼어서 깨질 것 같은 발바닥으로 조심스레 스피커를 옮기고 음악을 플레이 한 그날, 인생이 마냥 행복하다 느꼈습니다. 이렇게 음악이 감싸주는 게 얼마 만이었는지. 감사했어요. 그냥 누구에게든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소중하게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순환 근무로 인해 뉴저지에서 펜실배니아로, 펜실배니아에서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일리노이를 옮겨 다니는 동안 10키로는 족히 넘어가는 우퍼와 스피커를 캐리어에 우겨 넣고 다녔어요. 무게 때문에 체력을 쪽쪽 빨아가도 매번 여정이 마무리되면 이제 다 왔다며 혼잣말을 건네며 스피커부터 캐리어에서 꺼내곤 했지요. 그리고 스피커가 들려주는 음악 속에서 짐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12년 전 그 스피커는 베트남까지 따라와서 지금도 제 앞에 있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음악들에 길들여져 새삼 소리가 더 좋아진 것 같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옛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