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외근을 다녀왔다.
이메일과 전화와 메신저라는 문명의 이기를 무시한 상사의 지시는 꼭 토를 달고 싶게 만든다. 근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어차피 가게 될 거 싫은 소리 더 듣기 전에 얼른 나가는 게 상책이다. 급한 일은 빨리 처리하고, 시간이 안될 것 같은 일은 밑에 애들한테 디렉션이라도 주고 나가야 한다. 지급. 지급. 지급. 아웃룩은 온통 지급, urgent 로 도배되어 있으니, 도대체 어떤 일이 급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차라리 급한 내용임을 알리지 않는 메일에 더 눈길이 간다.
오늘 하루 내 일까지 떠안아야 하는 로컬 직원들은 벌써 삐졌다. 어르고 달래서 일을 한가득 주고 잰걸음을 걷자니 담배가 땡긴다. 쌍대만 남았다. 부리나케 다시 사무실로 달려가 한 갑을 더 가져왔다. 대면 제일주의는 오늘도 내수시장 활성화에 일조한다.
평일 한낮의 시내 모습은 낯설다. 매연과 오토바이 그리고 정비 상태 엉망의 도로만 내가 알던 모습과 동일하다. 대학 정문 앞을 지나는데 아오자이를 입은 대학생들이 보인다. 학생 때가 좋다. 할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심지어 하지 않으면 push 들어오는 건 부모님 밖에 없다. 물론 이 생각만 했던 건 아닌데 와잎느님이 내 스티밋을 즐겨 보신다. 그래서 officially 학업 얘기만 쓴다. 굳이 안 써도 되는 의도를 남기면 분명 한바탕 싫은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쓰는 건 알면서도 혼나는 재미가 있고, 알면서도 혼내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이런게 결혼의 재미인 거 같다.
시 경계를 벗어나니 온천지 늪과 숲과 경작지 그리고 구름뿐이다. 고속도로에서 이정표를 만나는 간격만큼 뜸하게 민가를 구경했다. 바나나 나무 잎으로 얽은 지붕과 있으나 마나 한 벽 그리고 해먹이 전부다. 10km 만 움직이면 구조니 조망이니 입지에 인테리어를 평하고 있는데 지붕이 바나나 나무 잎이다. 머지않아 순환 도로가 하나 더 생기면 여기도 평가의 대상이 되겠지.
역시나 미팅은 20분 만에 끝났다. 누가 누가 더 예의 바르게 잘 부탁드리는 스킬이 뛰어난지 견주다가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오른다. 그리고 곧 망할 교통체증에 갇힌다. 다리 위에서 한참을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자니, 맞은편 차선에서는 오토바이 한 대가 유유히 컨테이너 차량들 사이로 역주행을 한다.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는 게 아니라, 피식하고 지켜보자니 그래 이래야 베트남이지 싶다. 역시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지루하니 음악이나 듣는다.
세상에는 3가지 장르의 음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잘 모르는 음악,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루함을 견딘다.
20살 때 한창 윈앰프로 방송을 했었다. 당시 미국에서 방송을 들어주던 형이 있었다. 음악 하던 형이었고, 홈페이지도 운영을 했었는데 꽤나 분위기 있었다. dimlights 라는 문구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뉴욕의 사진을 깔아놓으니 그게 그렇게 멋져 보였다. 그리고 BGM 이 down to the bone 의 음악이었다. Brooklyn Heights. 좀 더 나이가 들고, 견문도 넓히면 그렇게 멋지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다.
시내로 들어서면서 저녁이 되고 흐릿하게 불빛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괜히 또 down to the bone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 이쁜 노을에 어설프게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