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리쿠르고스 (4)
토지공개념을 최초로 강력히 밀어붙인 사람은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였다.
추미애 대표가 자기 말을 실천에 옮긴다면 한국은 ‘추파르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쯤에서 그칠 리쿠르고스가 아니었다. 부동산 공개념을 완성시킨 그의 다음 수순은 유동재산, 즉 동산을 나누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난관이 있었다, 아무리 스파르타 사람들이라고 해도 품안의 물건을 노골적으로 빼앗아가는 데 대해서까지 태연히 인내할 리는 없는 탓이었다. 리쿠르고스는 교묘한 간접적 방법을 이용해 백성들의 탐욕을 굴복시켰다. 그가 채택한 전략은 실제적으로는 거의 가치, 정확히 교환가치가 없는 철로 된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이었다.
이 무겁고 불편한 철전의 등장을 계기로 스파르타는 한층 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갔다. 웬만한 물건 하나를 장터에서 사려고 해도 소 두 마리로 운반해야만 하는 이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돈 때문에 뇌물과 부패 따위가 들어설 여지가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용할 수 없는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었다. 단순한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리쿠르고스가 개변시킨 스파르타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설 땅이 없었다. 양화든 악화든 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돈을 없애는 데 성공한 리쿠르고스의 다음번 표적은 실생활에 불필요하거나, 보석이나 값비싼 장식품 같은 사치품 생산과 직결되는 기술들이었다. 실은 그가 굳이 제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기예들이었다. 그러한 기술로 만들어내는 물건들을 사들일 구매력이 이미 자취를 감춘 터였던 이유에서다. 수요도, 판로도 사라진 스파르타에는 외국의 상인들과 이방의 물품들이 더는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떠돌이 점쟁이마저 발길을 끊었다. 부자나 빈자나 생활수준이 똑같아진 마당에 재산은 그 어떠한 편리도 주지 못했다. 리쿠르고스는 부자가 되어야 할 필요성과,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없앰으로써 부자들을 없앴다.
그와는 반대로 침대, 의자, 식탁 등의 흔하디흔한 물건들의 품질과 효용성은 도리어 더 좋아졌다. 스파르타의 대표적 명품은 코톤, 즉 잔이었다. 전쟁에 나간 스파르타 장병들에게 이 물잔은 특히 사랑을 받았는데, 야전에서 음료수로 마셔야만 하는 여러 가지 샘물과 강물들의 탁한 색깔을 감춰주는 것과 더불어 불순한 침전물을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쿠르고스의 의도대로 스파르타의 장인들이 일상생활에 쓰이는 필수품들을 제작하는 일에 그들의 재능과 기술을 모두 쏟아 부은 덕택이었다.
리쿠르고스가 세 번째로 개입한 영역은 사람의 본능에 관련된 일이었다. 그는 성욕, 수면욕과 함께 인간의 3대 욕구의 하나인 식욕에 손을 댔다. 시민들이 각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도록 공동식사 제도를 고안한 것이다. 테오프라스토스는 공동식사의 창안이 부를 부가 아니게끔 만든 위대한 업적이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태양 아래 모든 도시들 중에서 오직 스파르타에서만 재물의 신인 플루토스가 아무 힘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부자들은 맛있고 기름집 음식을 집에서 미리 먹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잔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동식사에서 제공되는 먹을거리를 입에 대지 않으려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사회적 비난과 조롱이 따랐던 이유에서다.
인간의 본능을 건드렸으니 부유층을 필두로 격렬한 반발이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백주대낮의 길거리에서 왕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도 나타났다.
하루는 시장을 지나가는 리쿠르고스를 폭도들이 집요하게 따라왔다. 리쿠르고스는 다른 사람의 추적은 다 따돌렸으나 알칸드로스만은 뿌리치지 못했다. 알칸드로스는 성급하고 격정적인 성미이기는 했지만 본심마저 나쁜 청년은 아니었다. 단지 주변의 선동에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는 손에 든 지팡이로 리쿠르고스의 얼굴을 강타했다. 리쿠르고스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침착한 표정으로 의연하게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의 당당한 모습은 대중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폭도들은 자발적으로 해산했고, 리쿠르고스는 알칸드로스를 궁으로 데려왔다. 왕은 이때 입은 부상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리쿠르고스는 알칸드로스를 시종으로 삼는 것으로 형벌을 대신했다. 무엄하게도 왕의 한쪽 눈을 감히 멀게 한 이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는 리쿠르고스의 온화한 성품과 엄격한 생활습관, 그리고 경탄스러운 근면함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알칸드로스는 리쿠르고스의 열렬한 추종자로 변신해 왕이 추진 중인 개혁정책의 정당성을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열심히 홍보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사건 이후 스파르타에서는 지팡이를 지참하고 회의장에 들어서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후일담을 「영웅전」에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