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살던 시절, 약 이십여년 전 쯤에 엄마와 자매,우리 세모녀는 함께 목욕탕 가는 게 낙이었다.
서로 등도 밀어주고 (이상하게도 피부가 하얀 엄마는 아무리 때를 밀어도 나오지 않았으나 까만 피부의 우리 두 자매는 너무나 속 시원하게 국수가..)
온탕 냉탕을 번갈아가며 수영장에 놀러온 마냥 첨벙거리고 숨쉬기가 버거운 사우나에 물 묻힌 수건을 코에 대고 겨우 숨을 쉬어가며 누가 더 오래 버티나 하다 한명이 뛰쳐나가면 그걸로 승부 끝.
다 커버린 지금은 같이 목욕탕 가는 것도 쑥스럽고 간다고 해도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렇게 단순한 행복을 세상 제일 큰 행복처럼 여겼던 것은 그 외의 상황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무조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고 행복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역설적으로 행복하지 않았기에 작은 것에도 크나큰 행복을 느꼈다.
한때 독설로 유명했던 토익강사 김수연은 유학 시절을 회상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지금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유학 시절에 돈 아껴가며 햄버거로 때우며 공부했던 시절이에요.”
어르신들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기 키울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아기 키우는 사람들은 아기가 빨리 크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 키운 사람들은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물론 기억은 믿을 수 없는거라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아름다운 색칠을 더해 그 시절을 과도하게 미화해 그리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힘듬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 오히려 힘들었기에 행복했던 경험은 누구나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참으로 희안한 일이다.
우리는 미래에 이렇게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항상 현재에 불만족하지만 막상 바래왔던 미래가 되면 또 왠지 과거가 그립다.
프로이트가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는 투쟁했던 나날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스팀잇 초창기에는 댓글 하나만 달려도 뛸 듯이 기뻐했으며 나의 첫팬을 자처하는 분이 생겼을 때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한테 그 사실을 자랑했다. 너무나 행복했던 그 시절이다. 단 하나의 댓글이었고 단 한명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댓글을 다 달기가 힘들 정도로 댓글이 많이 달리고 팬도 한명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아마도..) 그런데 나는 솔직히 예전 그때가 더 행복했었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행복감의 정도가 그때가 더 컸다는 말이다.
그 당시 나는 분명 지금의 이 상황을 꿈꿨을 것이다. 팔로워가 많아지고 많은 분들이 나의 글을 인정해주는 것. 그런데 막상 그게 현실이 되자 나는 이 모든 것을 이제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행복감은 예전보다 떨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아무도 없던 그 시절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미 이 맛을 봤기에 그 시절로 돌아가면 아마 더 불행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인생 어느 지점에서나 행복을 느낄 만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딱히 가진 것이 없고 딱히 인정 받지도 못 할 때도 우리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진 것이 없기에 작은 것에도 크게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시절에도 살 만한 것이다.
반대로 노력을 하고 또 세월이 지나 자신이 꿈꾸던 미래가 도래했을 때 자신이 생각한만큼 환상적인 행복감은 아마도 느낄 수 없겠지만(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적응해버리기에)
또 그때 ‘아 그래도 옛날이 좋았지’라며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더 풍족해진, 예전보다 발전한 자신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낄 만 하다. 그래서 또 살 만하다.
이래도 살 만하고 저래도 살 만하다.
우리는 종종 현재를 누리지 못하다 현재가 과거가 되면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를 누리지 못 하고 미래만 꿈꾸다 막상 꿈꾸던 미래가 다가오면 과거가 그래도 좋았다고 아쉬워한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행복하지 못 했던 시절도 그랬기에 행복했다.
더 풍족해진 지금, 같은 상황에서 행복감은 예전보단 덜 하지만 발전한 내 모습에 또 행복하다.
인생은 어느 구간에서나 살 만하다.
그러니 우리 현재를 아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인생은 언제나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