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가 법륜 스님 강연장에서 한 말이 있다.
“우리는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입니다.”
듣고 보니 정말 인간을 이렇게 잘 표현한 말이 있나 싶다.
부자는 부자대로 고충이, 가난하면 가난해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해서,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을 안 해서, 직장 있는 사람은 직장 때문에, 직장 없는 사람은 직장이 없어서, 어릴 때는 나이가 어려서, 나이 들어서는 나이가 들어서 괴롭다.
‘삶은 고통 아니면 권태’ 라고 누군가 얘기했다.
이것 또한 어쩌면 삶을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우리는 고통을 가까스로 겨우 벗어나면 권태에 빠지고 권태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고통이 찾아온다.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게 바로 인생사인가보다.
처음 아기를 낳고 키우다보면 멘붕 상태에 빠지는데
그때 드는 생각은 바로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이다.
기저귀도 갈아줬고 젖도 줬고 안아도 줬다. 그래도 자꾸 뭐가 불만인지 계속 울어댄다. 정말 노희경 작가 말 그대로다. 너보다 내가 더 울고 싶다.
살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아마도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우리는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본다.
무조건 잘 해주는 예스맨 모드로 나가봤다가 또 이러니 사람들한테 너무 쉬운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밀당 모드로 튕겨보기도 하고 이러니 트러블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다시 미스코리아 모드로 계속 웃고 다닌다. 그러다 계속된 감정 노동으로 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누굴 위해 이러고 사는지 괜시리 삶에 회의가 든다.
역시나 이렇게 해봐도 이런 문제, 저렇게 해봐도 저런 문제가 도래한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가 편하지 하고 아무도 안 만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다. 음, 이것도 아니다. 너무나 외로워서 인터넷 댓글에 집착하게 된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인 아기 때문에 멘붕이었으나 둘째 아이를 키울 땐 쉽게 멘붕 상태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기가 갑자기 말 잘 듣는 울지 않는 천하에 착한 아기가 나왔느냐. 그건 물론 아니다. 아기는 우는 게 일이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그저 첫아이를 키우면서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처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의 아기 대처 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일을 다 했으면 그 뒤엔 쓸데없이 허둥지둥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로서 아기를 배불리 먹였고 찝찝한 기저귀를 산뜻하게 갈아주었으며 아기가 자궁 속에서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와 허전해 할 때 자주 안아주었다. 그런데도 계속 운다면 그때는 계속 당황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디가 아파서 우는 경우는 예외다)
엄마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면 그 뒤에는 여유를 갖고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 아기가 왜 계속 우는지 그 이유를 요리조리 생각해보고 이것 저것 울지 않을 방법을 시도해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인 사람 사이의 너무나 복잡하고도 미묘한 어려운 관계 속에서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라고 성질 내고 스트레스 받고 혼자 방콕하며 댓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딸로서, 동료로서, 아내로서 나의 할 도리를 하면 된다.
할 도리를 다 했는데도 아직도 불만인 그 상대방이 있다면 그 후에 우리가 할 것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미소를 머금은 채 ‘저 사람이 계속 불만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것저것 관계를 더 좋게 만들만한 방법을 시도해보면 된다.
그런데도 계속 ‘지랄’이라면?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니.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했고 그걸로 내 역할은 다 끝난거다.
나머지는 상대방의 몫이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아기가 왜 계속 울까?
그건 아기 자신도 모른다. 우리도 모른다.
추측하자면 그저 이 세상에 아직 적응을 못 해서일 것 같다.
사람들은 왜 계속 지랄일까?
그건 그 자신도 모른다. 우리도 모른다.
추측하자면 이 세상에 아직 적응을 못 해서일 것 같다.
나도 지랄이고 그도 지랄이다.
왜냐.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랄하는 우리 서로를 조금은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봐주자. 우리 자신도, 또 그도.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에 완벽 적응하는 날.
우리는 드디어 울음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러니 부족한 우리 인생을,
자꾸만 울고 불평하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자.
완벽주의만큼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도 없다.
부족한 자신을 하루 한뼘씩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되, 우리가 영원히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머릿속에 새겨두면 좋겠다.
나에 대한, 타인에 대한, 삶에 대한 ‘연민’은
한없이 날카로워진 우리들을,
자꾸만 고통스러워지는 우리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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