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나날들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어렴풋하다.
‘난 이랬었지.’ 생각하다가도 그것도 내가 현재의 기분에 맞춰 과거의 기억을 가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어느 때는 좋았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때가 그렇게 좋았었는지도 아리송하다.
사진도 믿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과거의 사진을 보면 대부분 웃고 있는 사진이 많이 있는데 보통 사진 찍을 때는 일부러라도 웃지 울고 있을 때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사진을 보고 ‘그래. 이때는 참 좋았어.’라고 떠올리기도 애매하다.
그저 어렴풋한 기억의 끈을 붙잡고 ‘그때는 좋았던거 같아..’ 하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두렵고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두렵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사람이 있다면 삶이 더 두렵기 때문이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은 죽기 전에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군. 그래. 그래도 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어.’라고 충만함을 느끼며 미소 지으며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일분 일초라도 아끼며 부지런하게 사는 것?
아니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가고 사는 것? 아니면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남을 도와주며 사는 것?
모두 좋지만 이것을 다 한다고 해서 과연 죽기 전에 ‘그래. 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난 후회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기까지는 후회없다고 생각할만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 정말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며 살았다고 해서 그 본인은 또 무언가 공허했다고 자신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했다고 여길수도 있고,
또 한평생 남을 도우며 산 사람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그냥 내 하고 싶은거나 하고 살걸..’ 라고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걸 입밖에 자신있게 내놓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후회없는 인생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라!” 라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저 죽기 전에 ‘난 후회없어.’ 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단단히 키우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내 모든 인생의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은 거의 기억나질 않아. 그렇지만 난 날 믿어. 난 매순간 그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거야.
난 매순간 내가 즐길 수 있는 한 최대한 즐기며 살았을거야. 그래. 난 인생을 그렇게 살았을거야. 난 날 믿어. 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을거라고.’
이렇게 우리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는지 본인이 결정하기에 다른 것보다 자신을 믿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키운다면 남들이 보기에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았더라도 그 자신은 ‘난 후회없어.’하고 충만함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자신을 자꾸 의심하는 사람들,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갖자.
법륜 스님은 선택할 때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 일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결정한 것에 좋든 나쁘든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지려고,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도 점점 우리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날이 하루하루 지나, 우리가 머리가 희끗해져 드디어 두려워했던 그 날이 왔을 때, ‘드디어 그 날이 왔군. 난 날 믿어. 난 최선의 인생을 살았을거야. 난 후회없어.’ 라고 미소를 지으며 후대 사람들에게 자리를 뿌듯하게 물려주고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 바로 이 순간부터 내가 나를 믿어주는 연습을 해보자.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자.
나부터 나를 믿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