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강연으로 유명해진 김창옥 교수는 몇년동안 매주 계속해왔던 자신의 포프리쇼를 잠시 중단했다가 최근 다시 시작했는데 그의 강연에서 한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저는 자아가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저한테 스스로 말할 때가 있어요. ”
‘너 이거 위선이야.
너 스스로도 잘 살지 못 하면서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거’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은 치유를 하는 사람인 동시에 치유를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한다. 상처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심리치료사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우리는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게 된다.
내가 쓰는 글은 모두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자신에게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 말이다. 나의 상처를 바라보고 다른 이도 나와 같은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되고 나보다 그의 상처를 더 보듬어주다보면 어느새 나의 상처가 이제는 그다지 쓰라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옅은 흉터만 남기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신주 철학자는 종종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고 했다.
그러는 너는 그렇게 사냐고.
그럼 강신주 철학자는 이렇게 얘기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못 산다고.
그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지혜로워져라. 세상은 지혜로운 자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로운 체라도 해야 한다”
가끔 내가 만인에게 공개한 글들을 보며 참 우습다는 생각도 한다.
‘말은 참 번지르르하네...-_-’
라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누군가의 말에 따라 열심히 지혜로운 ‘척’을 하는 중이다. 어느 날 정말 지혜로운 자가 될 그 날을 위하여.
김창옥 교수가 자신이 위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대목에서 나도 내가 이렇게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위선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고 또 다른 위선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또 다른 위선은
“알아..난 너의 아픔을 다 이해해..”
하는 위선이다.
우리 엄마는 우리 아버지와 두번 헤어지셨는데 첫번째는 내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아기일 때이고 두번째는 내가 대학생일 때이다.
아버지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고자 했던 엄마는 또 다시 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헤어지시기만 하면 엄마가 행복을 찾을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기우였다. 나는 그만큼 바보같으리만큼 단순했던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술만 드시면, 아니 평소에도 자주 아버지에 대한 분통을, 그 풀리지 않는 분노와 원망을 나에게 털어놓으셨고 나는 그러한 엄마를 처음에는 이해(하는 척)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엄마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게 사신 건 <이해>해.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으면 엄마도 이제 훌훌 털고 새 삶을 사셔야 하는 거 아냐? 아니, 한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어찌됐건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야 하는거 아냐?’
나는 말로는 “그래 엄마 내가 엄마 상처 받은 거 다 이해해..” 하면서도 엄마의 나를 향한 상처 받은 아픈 마음의 그 부정적인 기운을 감당해내기가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탓은 엄마에게로 돌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시는>엄마의 탓으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과연 엄마를 ‘이해’ 했을까?
내가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엄마는 아무런 가족의 도움도 없이 밤낮으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첫사랑이었던 남편에게 두번이나 상처를 받고 두 딸을 혼자의 힘으로 키워냈다.
나는 어떠한가.
비록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보냈다고는 하나 아버지가 특히 엄마를 괴롭혔지 자식들을 더 괴롭히지는 않았다. 나는 집에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학교에 가면 그뿐이었다.
모든 책임과 괴로움은 엄마가 다 짊어졌고 나는 그저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대학 다니고 유학 가고 결혼 하고 지금은 홀연히 외국에서 엄마 신경쓰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호위호식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는 내가 엄마를 <이해>한다니..
내가 그런 상처 받은 엄마의 마음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다니..
내가 엄마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나는 과연 내가 계속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조차 자신이 없다. 그런 주제에 내가 엄마를 평가하다니...
참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한번도 말다툼 조차 없이 계속 사이좋게 지냈던 고등학교 단짝이 있다. 그 친구와 유일하게 한번 발끈했을 때가 있는데 바로 내가 그 친구에게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털어놓았을 때다.
나 왈: “시어머니랑 같이 있는게 너무 괴로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친구 왈: “피할 수 없으면 즐겨..”
.................
나는 그 친구의 그 말에 너무나 상처를 받았고 처음으로 그 친구에게 발끈하며 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했다.
(그 친구는 훗날 나에게 자신이 그 당시에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고, 자신도 그 갈등을 겪어보니 이제 너가 그때 느꼈을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가.
그리고 자신은 선의라고 굳게 믿지만 은연 중에 ‘나는 너와 달라’ 라는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아파하는 그에게 말을 건넨다.
“나도 너 심정 이해해... 그래도 어쩌겠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똑같은 아픔을 겪어보지 못 했으면 차라리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말고 조용히 그의 말을, 그가 지닌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도록 가만히 들어주거나 말 없이 그를 껴안아 주는 게 낫다.
섣불리 나는 그를 ‘모두’ 이해했고 그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내가 그보다 낫다는 우월 의식에 사로잡힌 것이다.
아파보지 못 했으면 말을 마라.
섣불리 상대에게 너 이렇게 살라고 충고하지 마라.
아주 중요한 한마디를 매 순간 기억하며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나 잘 하세요..”
그래.
우리 모두
“나나 잘 하자.
남 신경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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